2018년 11월 1일, 수년간 인공수정부터 시험관까지 여러 시도 끝에 우리는 예쁜 여아 쌍둥이를 얻었다. 약 2개월 가량 대학병원에서 자궁경부 길이가 짧아 입원하였고 머리도 자원봉사자 분들이 감겨주시고 그런 고행의 길 끝에 나는 천사 같은 지금의 딸들을 얻었다.

나의 기쁨 쌍둥이들. ⓒ하O경
20대때에는 마냥 놀고 친구들 만나서 주말을 즐기고 그저 삶을 만끽하는데 여념이 없었는데 막상 30대가 되어서는 아이가 갖고 싶어졌다. 좋은 엄마이자 좋은 양육자가 되고 싶었다. 9살이나 어린 남편은 이제 갓 사회에 진출하여 일을 막 시작하였고 나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는 원인불명의 난임으로 한동안 많이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예쁜 아이들을 얻었고 이 아이들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예쁜 말과 표현도 하면서 우리들이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고생하였던 것들을 모두 보상해 주는 기분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이제 교사이면서 학부모의 마음으로 학생들의 위치를 이해하고 다가가게 되었고 기존에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키즈카페, 유치원, 어린이집, 놀이터, 노키즈존 레스토랑까지 그 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것들이었는데 이제는 눈을 크게 뜨고 보게 되는 것들이 생겼다. 출산과 육아는 나의 가치관과 관심사를 180도 바꿔놓았다. 사실 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다. 내 삶이 행복하면 그만이었던 사람이었다. SNS에 노출되는 멋진 곳을 방문하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내가 열심히 일해 원하는 것을 사고 이렇게 내가 원하는 삶을 살며 나름 만족하였던 것 같았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고 남편이 아이를 갖고 싶어 했고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자녀를 통해 잘 이끌어가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내게 깊이 전달되었고 그 때부터 우리는 아이를 갖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것 같다. 막상 아이를 낳아보니 참 세상이 뜻대로 안되었다. 쌍둥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제서야 나는 부모님께서 우리 삼남매를 얼마나 고생하며 힘들게 키우셨는지 깨닫게 되었다. 부모가 되면서 나는 어른이 되었다. 미래를 이끌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환경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생각하며 보존해야 하는 소중한 것이라 교육하게 되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내’가 되었다. 두 살이 될 때까지 참 많은 시행착오와 부부간의 다툼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말을 하면서 우리의 갈등과 응어리는 눈녹듯이 사라졌다.
아이들은 정말 순수하고 배려할 줄 알면서 우리에게 막중한 책임감을 주었다. ‘이 아이들이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영원히 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 앞에서 더욱 바른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운전을 천천히 조심히 하게 되었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법을 익혔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기어다니다가 잡고 일어서는 순간, 걷기 시작한 순간, “엄마, 아빠”라고 말하는 순간 등 모든 순간들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아이들은 우리들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었고 더욱 열심히 일하게 내적 동기부여를 하였다.
지금 우리는 동네에 있는 병설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낸다. 유치원에서는 종일반이라고 있는데 오전 7시30분부터 아이들을 받아주고 7시까지 아이들을 맡아준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을 조금 덜었다. 그리고 아이들도 정말 유치원을 행복해하며 다녀서 우리는 진심으로 유치원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적부터 맞벌이인 우리에게 시에서 운영하는 정말 유용한 제도들이 있었는데 바로 시간제보육, 휴일보육이다. 휴일에도 업무가 있을 때 등원 도우미가 올 수 있는 상황이 못되었을 때 우리는 시에서 운영하는 각종 육아지원제도를 적절하게 활용하였다. 그래서 여러 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아플 때 가장 힘든 순간들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가족돌봄휴가나 육아시간을 이용하여 조직에서 배려를 받았고 이렇게 아이들이 이제 여섯 살이 되었다. 지금은 자기 의사도 표현하고 그림도 그리고 한글도 느릿느릿 쓰곤 한다.

우리는 지금 셋째를 기다리고 있다. ⓒ하O경
우리는 이제 또 셋째를 생각하고 있다. 쌍둥이가 여섯 살이 되니 셋째도 키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기존에 다니던 병원을 다시 다니고 있다. 그때는 너무나 간절하여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면 지금은 보다 긍정적이고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다. 간혹 사람들은 둘도 힘든데 셋까지? 누구 좋으라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운가봐요...라는 말을 하곤 한다. 아니다. 나는 가사도우미도 함께 하지 않으며 아이들을 양육했다. 물론 가끔 부모님께서 도와주시곤 했지만 남편과 둘이서 역할 분담을 잘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셋째는 또다른 행복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물론 부담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모두 삼남매 가정에서 자라 형제, 자매의 든든함과 가족의 유대감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자랐기에 셋째를 갖기로 결정했다.
나는 불혹이다. 아이를 갖기에는 조금은 위험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다. 아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주고 일년 정도 잠 뒤척이며 아이를 돌보고 나면 어느새 언니 또는 누나들과 함께 더욱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지금 우리 둘째는 엄마가 힘들까봐 이불을 개키고 신발정리를 도우며 청소를 도맡아 한다. 얼마나 기특한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런 행동을 보일 때마다 절로 미소가 나온다. 첫째는 말도 안되는 신기한 요리를 만들어서 먹으라고 가져오는데 이 또한 나에게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행복이자 기쁨이다. 올해는 꼭 우리 쌍둥이에게 동생이 생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