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내게 다가온 순간들을 잊을 수가 없단다. 2017년 5월 6일 나의 햇빛 찬, 나의 달빛 결, 그리고 2019년 9월 23일 나의 별빛 현.

사랑하는 나의 아들들에게. ⓒ이O
평생을 내 앞만 보고 달려온 아빠에게 너희들은 또 다른 내가 되었단다. 조산아로 태어나 서울시의 복지혜택을 받으며, 오매불망 아프지 않을까 낮이든 밤이든 항상 아빠는 너의 곁에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거야.
처음에는 어색했어. 까무잡잡한 피부색에 쭈굴쭈굴한 얼굴을 보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환희는 순간은 없었어. 미안해. 하지만 나를 쳐다보는 그 순진무구한 너희들의 눈망울만은 잊어버릴 수가 없단다. 이전에 문학작품에서만 읽었던 고사리 같은 손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으며, 나의 손가락을 잡고, 나를 보며 웃는 너희들은 미소는 남자에서 아빠로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단다.
아빠의 회사가 너무나도 바쁘던 당시 우리 찬결이가 2살 때 동생인 현이가 태어났어. 일과 양 육을 동시에 할 수 없던 아빠는 한참을 고민 끝에 엄마아빠육아휴직 장려금의 도움으로 잘 나가 는 커리어보다는 아빠의 삶을 선택하기로 했단다. 아빠 회사의 한 상사께서 그러셨어. 아웃라이 어라는 책에 1만 시간의 법칙이 나오는데 누구나 1만 시간을 갈고 닦으면 전문가가 된다는 뜻이란다.
근데 그 상사 분은 1만 시간을 가정에 쓰는 것도 절대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고 하셨어. 그말을 듣고 아빠는 남자로서 아빠가 다니는 회사에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썼단다. 아마 장려금이 없었다면 경제적·현실적인 이유로 도전하지 못 했을거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6개월이라는 시간 속에 아빠는 더 없는 행복을 느꼈어. 한 겨울 아침마다 어린이집을 향하던 투명한 유모차 커버에 너희들의 숨결에 알알이 맺힌 습기마저도 한 방울, 한 방울이 귀여웠단다. 너희들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돼 아빠는 다시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어. 고마워.
아빠가 너희들을 데리러가기 위해 어린이집으로 가면 너희 셋은 항상 근처에 놀이터로 향하지.
셋이 올망졸망 비틀비틀 아장아장 걷고 있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노라면, 아빠는 항상 너희들이 넘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해. 그럴 때다 아빠는 넘어지지 않게 너희들의 삶을 항상 지탱해 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어. 힘들 때 쉴 수 있고, 졸릴 때 기대어 잘 수 있는 그런 든든한 아빠가 되
고 싶구나.
다둥이카드로 할인을 받아 서울식물원에 놀러가서 우리 찬이, 결이, 현이가 좋아하는 끈끈이주걱을 보던 날이 떠올라. 끈끈이주걱의 잎사귀가 악어 같다던 너희들의 신기한 표정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단다. 비록 야외식물원장에서 온 몸에 진흙을 뒤집어쓰고, 옷과 신발을 모두 빨아야 했지만 TV로만 보던 끈끈이주걱을 보여줄 수 있어 뿌듯했어. 집으로 돌아와 우리 찬이가 아빠에게 말했지. “아 오늘도 행복한 하루였다.” 그래. 그거면 됐어. 아빠는 너희들의 그 말, 그 미소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단다.
잠 잘 때면 아빠는 너희들의 포도알 같은 발가락을 만지며 자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었단다.
따듯하고, 적당히 부드러운 너희들의 발가락을 만지고 있으면,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새근새근 잠든 숨소리와 가슴까지 올라온 내복, 발로 차버린 이불, 그러면서도 서로 고개를 맞닿고 자는 너희들의 모습은 아빠에게 큰 안식으로 다가온단다. 아빠의 마지막 소원이 하나 있다면 아빠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 너의 삼형제가 내 곁을 지켜줬 으면 좋겠구나. 하늘하늘 흔들거리는 머릿결과 나의 우주가 들어있는 눈빛, 빵빵한 볼, 너무 귀여운 코, 새빨간 입술, 언제나 통통한 배, 길쭉길쭉한 다리. 나를 보고 돼지코라며 해맑게 웃어주는 미소. 너희들의 예쁘고 귀엽기만 모습 잘 담아서 갈게. 그 때 너희들에게 귓속말로 나지막이말해주고 싶어.
“엄마 없이 잘 커줬구나. 든든한 나의 아들들.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줘서 너무 고마워.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 함께해서 행복했어.”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 나의 아들들아. 부족한 아빠지만 너희들의 남은 날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