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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입선] 6시 15분! 나는 엄마가 된다(김O형)

관리자 2023.04.26 13:34 조회 63
저녁 6시 15분! 비디오폰에 1번 종모양을 누른다. 비디오폰 화면에 내 얼굴이 비친다. 나는 퇴근후 혼자 있는 아이를 생각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어린이집 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어린이집 문이열리는 그 짧은 시간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진다.

운이 좋게 동네에서 직장을 구한 나는 퇴근하자마자 어린이집으로 간다. 어린이집 로비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니 어린이집 중문 너머로 도토리처럼 자그마한 아이의 머리카락 윗부분이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아이는 문 위쪽이 유리이지만 문 아래쪽으로는 나무여서 엄마인 내가 보이지 않으니 보고 싶었나 보다. 선생님이 가방을 가져오는 사이에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는 아이 모습이 그려진다.

아이는 언뜻 엄마를 보았나 보다. 그게 재미가 있는지 문 뒤에서 혼자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보통 친구들은 여섯시 전에 가서 우리 아이는 혼자서 기다릴 때가 많다. 하지만 쾌활한 막내는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는지 항상 기분이 신나서 뛰어나온다.

“안녕하세요~!!!”

우렁찬 목소리로 허리를 기역자로 구부리며 인사하는 아이이다. 선생님이 예쁘게 머리를 묶어주셔서 그런지 아침보다 더 그 모습이 깜찍해 보인다.

“안녕히 계세요 해야지~”

선생님은 그 모습이 귀여우신지 연신 웃으면서 이야기 하신다.

“셋째라 그런지 너무 야무져요~!”

선생님은 마지막 장난감 정리를 아이가 도와줬다고 칭찬을 덧붙이신다. 아이가 잘 한 건데도 괜히 엄마인 내가 우쭐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선생님 손에 있는초록색 어린이집 가방을 받고 어린이집 가방을 내 어깨에 걸친다. 어린이집 가방은 아이에게는 참 커보이는데 내 어깨에는 앙증맞게 걸쳐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신발장에 오두커니 한쌍으로 남아 있는 아이의 신발을 집는다. 아이의 신발은 한창 분홍색에 빠져 그 신발만 고집하니 신발 앞코가 얼룩덜룩하다. 디자인은 중요하지 않고 색깔이 제일 중한 것 같다.

“잠깐!!”

아이는 어린이집 문 앞에서 나를 멈춰 세운다.

“가방! 가방 주세요.”

아이가 가방으로 손을 내밀기에 나는 가방을 내 어깨에서 내려서 보여준다. 아이는 지퍼를 내리고 다급하게 뭔가를 찾는다. 가방에 선생님이 맛있는 것을 선물로 주셨나보다. 가방을 뒤적거리며 하리보 젤리를 찾더니 만족했다는 듯 활짝 웃는다.

“어어~집에가서 손 씻고 먹어요~”

뒤에서 선생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손 씻고 먹자고 말하려는 사이 아이는 벌써 봉지를 뜯었다. 조그마한 손으로 참 야무지게 뜯는다. 야무지긴 야무진가 보다. 결국 아이는 목적을 달성하고 가는 길에 하나씩 꺼내서 먹는다. 나에게 젤리 중 하나를 주더니 마지막에 봉지가 빈 것을 보고 도로 달라고 한다. 우리집 막내는 줬다가 도로 뺏는게 특기인가 보다. 

어느 날은 언니에게 주면서 작게 귓속말로 “언니 이래야 칭찬 받아.” 그랬다고 한다. 그러면서 줬던 것을 도로 가져갔다는 거다. 그렇게 칭찬 젤리를 받는 건지. 지윤이는 젤리를 많이 받은 날은 젤리 봉지가 3개나 된다. 그날 나에게 2개는 나에게 줘서 나는 엄청 감동을 받았다. 선생님도 효녀라면서 칭찬을 하셨었다. 우리집 막내는 가는 길에 나에게 다시 달라고 가져갔지만 말이다. 언니 오빠도 안주고 3봉지를 열심히 먹는 막내다. 집에 가면 언니 오빠에게 뺏기니 홀랑 먹는 것 같다. 왠지 다른 것은 몰라도 음식이라도 풍족하게 못 먹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하다.

나는 인도에서 아이에게 손을 달라고 해서 손을 잡는다. 고사리처럼 작은 아이의 손은 너무나 따뜻하고 보들보들하다. 그 손을 잡고 있으면 이상하게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만족감이 든다. 그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가는 그 순간이 왠지 행복하다. 아이는 내게 말을 걸어온다.

“엄마 딕방가자.”
“어?”
‘딕방이 어디지? 마트도 아니고.’ 한참을 생각하다 아이의 말을 이해한다. 식빵가게 인거다. 요즘 한참 오빠가 꽂혀있는 동네의 식빵가게를 가자는 말이다. 처음엔 초코 식빵을 맛있다고 하더니 이제는 밤식빵이 맛있다고 한다. 아이와 나는 고소한 냄세가 가득한 흑석시장을 지나서 식빵집으로 향한다. 시장안에 가게중에서도 과일가게 아주머니한테 인사하는 막내이다. 과일가게에서 막내가 좋아하는 사과, 바나나, 귤, 포도를 살 수 있어서 좋아한다. 오늘은 과일을 사지 않고 식빵가게로 바로 간다. 식빵 하나를 사가면 아이가 셋이라 하루나 이틀이면 금방 없어진다. 너무 자주가서 그런지 식빵가게 사장님이 우리를 알아보신다. 우리가 가는 시간은 빵이 거의 소진된 시점이라 막내가 원하
는 초코식빵은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오빠가 좋아하는 밤식빵을 산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나몬 식빵이 맛있었으나 시나몬 빵은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았어서 사지 못한다. 그래도 밤식빵을 샀으니 막내는 좋아하며 내 가방에 담는다. 우리는 사장님께 인사드리고 가던 길을 간다. 

이제 언니 오빠를 데릴러 갈 시간이다. 작은 발로 열심히도 따라오는 막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제촉해서 그런지 막내가 발을 헛디뎠다. 아프다고 울어서 미안한 마음에 나는 아이를 품에 안는다. 한참을 그렇게 걷다가 미술학원에 도착한다. 이미 그림 그리기는 마쳤는지 아이들은 놀고 있다. 엄마가 왔다고 소란소란하다. 이제 우리집 아이들이 견우와 직녀처럼 다 모였다.

아들인 둘째는 남자아이라 그런지 특히 많이 까불까불한다. 예전에는 말도 느려서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언어치료 바우처도 했었었다. 이제 제법 말을 해서 그런지 느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내눈엔 왜 그리 느려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병설유치원 담임선생님께서는 언어치료를 하는 둘째아이 이야기도 많이 들어주시고 귀엽다고 사랑을 듬뿍주셔서 그런지 유치원에 입학한 후로는 말하기에 자신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유치원을 졸업 할때는 또 왜 그리 슬퍼하는지 아이에게 유치원 생활이 정말 즐거웠는데 더 이상 유치원에 못가는게 너무 안쓰러웠다. 

이제는 초등학교 가방을 메고 새로 생긴 가방이 좋아서 집에서도 메고 있는 둘째이다. 까불까불한 둘째 아들은 엄마를 가로질러 먼저 뛰어간다. 나는 불안불안하다. 먼저 가지 말라고 소리로 불러보지만 막내 아이가 있어서 걸음이 느리다. 둘째 아이가 그래도 멈춰줘서 다행이다.

“엄마 좋아.”

첫째 딸은 나에게 팔짱을 끼고 옆에 딱 붙어서 걸어 간다. 첫째 딸은 언제 이렇게 컷는지, 이제 엄마 마음도 아는 첫째 딸하고의 대화가 제법 재미가 있다. 우리 셋째딸이 또 옆에서 질세라 조잘조잘 한다. 둘째는 보기 보다 잘 삐져서 엄마가 자기 말을 바로 안들어줬다고 토라져 있다. 이거참! 부족한 엄마인데도 좋아해주는 우리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집에 도착해서 나는 지나오는 길에 들린 흑석시장에서 산 반찬과 밥 그리고 약간의 국을 끓여서 아이들 식판에 올려준다. 아이들은 이상하게 식판에 반찬을 주면 다 먹어야 하는 미션처럼 먹는다. 어째 골고루 먹긴 하는데 하나 한반찬씩 마스터하 듯 먹는게 엄마인 내가 보기에는 요상하다. 누군가 나 이거 다 먹었어 하면 옆에서 나도 나도 하며 빈 접시를 내미는 아이들이다. 이제 식판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기도 한다. 셋째는 어린이집 가방에서 엄마인 나를 애타게 부르더니 내가 쳐다보자 어린이집 가방에서 수저통과 물통까지 꺼내보인다. 엄마인 내 칭찬을 기다리는 눈빛으로 반짝이며 쳐다보는 모양이 꼬리를 흔들며 기다리는 강아지 같다.

집에 도착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집안 물건들이 여기저기 나와서 돌아다니고 있다. 치우고 돌아서면 어지러운 것이 어느 집엔 우렁각시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 집에는 물건을 모아 어지르는 모아 도깨비가 있는 것 같다.

부끄럽지만 아이들만 악동인가! 엄마인 나도 팥쥐 엄마처럼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이녀석들! 아빠오기 전에 어서 치워!!”

그러자 콩콩뛰면서 더 난리이다.

“밑에 집 할아버지 봤지? 미안하지도 않아?”

이렇게 소란스러운데도 자기 손주가 생각나신다며 이해해주시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웃으시 는 아랫집 어르신이시다.

이번 설날연휴 인근에 마주치자 어르신은 “시골 안가십니까?” 하며 말씀하시는게 왠지 나는 우리 아이들이 시끄러워 연휴만큼은 조용히 지내시고 싶으신게 아닌가 괜히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적도 있다. 애타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둘째 아들은 안방 창문도 깨뜨려 먹고, 화장실 변기뚜껑을 떨어뜨려 변기통도 구멍내놓고 사고를 한두개 치는게 아니다.

방금도 셋째동생과 다투고 동생을 울리고 있다. 거인의 정원에서 이러니 거인이 아이들을 쫓아낸게 아니겠는가!! 거인의 마음이 나는 백번 이해가 간다. 왜 명작이겠는가. 그건 아이들을 둔 부모를 위로하기 위한 동화인 것이다.

가끔 우리나라에서 다자녀는 애국자다 말하지만, 실상은 다자녀를 보는 시선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안다. 제대로 키우지 못할 거면 왜 낳았냐고 질책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식 욕심이 많아서 저렇게 무식하게 낳았냐 하는 경우도 있다.. 도리어 다자녀에게 짜증이 난다고 짜증을 내시는 분도 있다. 어쩔때는 그냥 마음이 먹먹하다. 솔직히 병설유치원이다가 단설로 바뀌었지만 다자녀 맞벌이인데도 우선순위에도 못 들고 심지어 방과 후 에듀케어도 떨어진 현실을 볼 때면 울컥할 때도 있다. 아마도 같은 자녀를 키우며 우선순위를 달라는 다자녀 엄마가 얄밉고 밉기도 할 것 같다. 한자녀 키우는 것도 버거운 현실이니까. 하지만 어쩔 땐 한자녀를 둔 부모가 나는 부러울 때가 있다. 다자녀맘이 40만 원 하는 사립유치원을 어찌 선뜻 보내겠는가. 대기업에 다니며 외부 강사도 하고 있는 신랑급여와 내벌이에도 풍족하지 못하니 말이다. 우리 둘이 살거나 아니면 자식 하나만 이었다면 정말 남부럽지 않게 살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대체 나는 무슨 용기로 이렇게 아이들을 많이 낳았나 싶을 때가 있다.

사실 셋째는 원하던 아이가 아니어서 심한 우울증도 왔었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그 셋째로 우울증이 또 낫게 될 줄 말이다. 나는 아이들이 있어서 유리멘탈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집 살림은 넉넉하지 않지만 마음은 전보다 단단해지고 쉽게 요동치지 않게 되었다. 첫째아이 한명만 키울 때 보다 내 마음은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사고도 치고 발달이 늦은 둘째 아이와 조그마한 아가인 셋째를 키우면서 나는 조급한 마음을 버릴 수 있게 되었고, 첫째아이와 더 돈독해 질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시기에 초등 1학년이 되었던 울보 첫째아이는 이사를 와서 어울릴 친구 없다며 쉽게 울고는 했다. 하지만 초등 4학년이 된 지금 첫째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재미있고 놀고
싶은 친구가 되었다. 아이의 눈빛도 전처럼 흔들지 않고 밝고 유쾌해 졌다. 아이는 월화수목금 학교 끝나면 매 요일마다 돌아가며 친구들과 놀고 공부는 더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기다리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하나 정리는 하고 자야 하지 않겠는가?

“어서 이 닦고! 정리 마저 해!”

라고 독촉해 본다. 어휴! 내가 하고 말지 라고 말하는 찰라 현관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늦은 저녁 현관문이 열리며 아이들 아빠가 들어온다. 어째 같이 맞벌이 하는데도 우리 남편이 훨씬 지쳐 보인다. 제발! 사장님들 일찍 좀 퇴근시켜 주십시오. 아이셋 엄마 쓰러집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귀여운 막내가 또르르 달려가자 남편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아빠, 왔어? 지윤이가 아빠 기다렸어. 많이”

저렇게 예쁘게 이야기 하는데 어찌 안좋겠는가.

남편도 오늘 하루 고생했겠지만, 나도 오늘 하루 고생했다. 나는 심지어 아직 일이 끝나지도 않았다. 설거지도 해야 하지 않는가? 오늘 아이셋 엄마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가나보다. 아이들 고른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오늘 하루도 그렇게 잠에 들어본다. 내일 6시 15분! 나는 또 1번 초인종을 누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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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 키우는 행복. ⓒ김O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