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추석이었다. 결혼 후 3개월쯤 맞이한 첫 추석이라 집들이 겸 시댁을 초대했다. 우리 부부는 서툰 솜씨로 함께 요리를 했다. 어머니는 힘들게 요리하지 말라며 음식을 싸오셨다. 서로 배려하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했다. 맛있고 다양한 요리들에 곁들인 술과 함께 시간이 무르익을 무렵, 넌지시 시부모님께 여쭤보았다.
“아기가 생긴다면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해보자”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서울시에서 나오는 조부모 수당에 보태서 용돈을 드려야겠다고 계획했다.
한 아기가 온다는 것은 온 가족이 마음의 준비를 하게 만든다.
2주 뒤, 일을 하다 혼자 겉옷을 찾았다. 춥고 으슬으슬했다. 배송시켜둔 임신 테스트기가 아직 오기도 전이었다. 배송 완료 문자를 받자마자 바로 해보니 코로나도 안 걸려본 내가 생에 처음 보는 두 줄의 테스트기를 봤다.
그저 당황스럽다. 처음엔 믿을 수 없어 핸드폰으로 찍어서 남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봤다. 그게 내 첫 임밍아웃(임신 사실을 알리는 신조어)이었다. 남들은 울기도 하고, 얼싸안고 하던데 현실은 이랬다. 병원에 가보니 너무 빨리 알게 돼서 2주는 더 있다가 오라고 한다. 내 생에 가장 긴 순간이었다. 아침마다 임신 테스트기를 해오다 병원에 가서 아기집을 보고 임신확인서가 나왔다. 나라가 인정하는 임신부가 된 것이다. 바로 보건소에 가서 임신부 배지를 받았다. 임신부가 되면 가장 해보고 싶었던 건 소소하게도 임산부석에 앉아보기였다.
임신 초기엔 안정도 중요하지만, 운동도 적당히 해야 하기에 햇볕을 쬐며 걸었다. 걷는 순간 혼자가 아니라 둘이 걷는 기분이 꽤 경이로웠다. 내 몸에 처음으로 고귀한 감정이 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한 아이를 품는다는 건 정말 고귀한 일이구나.’

한 아이를 품는 다는 건 정말 고귀한 일이구나! ⓒ(신O정)
축구를 좋아하는 남편이 나에게 붙여준 가장 맘에 드는 별명은 두 개의 심장이다. 내 몸에 지켜내야 할 심장이 하나가 더 있다는 게 책임감을 주기도 하지만,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어느 누가심장을 지켜낼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이래서 위대한 것인가. 함께 뛰는 이 심장이 때로는 숨이 차기에 버겁기도 하지만 나는 엄마이기에 해낼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밤에 남편과 나란히 누워 오순도순 얘기하는 시간이다. 임신한 이후로 둘의 대화가 끝나면 남편은 태아에게 태담을 한다. 거창하기보다 사소한 행복으로 나는 태교를 한다.
임신 초기엔 아무런 느낌도 없어 태아 초음파로 아기 심장소리를 찾아 몇 주간을 헤매다 겨우 심장소리를 듣고 나면 어느새 태동이 시작된다. ‘이게 태동인가?’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활발한 태동에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 움직임에 익숙해지고, 다시 잠잠해지면 불안한 하루가 된다. 매월 받는 검진은 기다림이 기대되지만, 2번의 기형아 검사와 임신성 당뇨 검사 기간엔 내내불안했다. ‘결과가 잘 나와야 할 텐데‘라며 고민하는 이것 또한 모성애라고 한다.
아기는 고작 1kg도 되지 않는데 체중계 숫자는 늘 올라간다. 내 살인지, 아기인지도 모를 배를 매일 쳐다보면서 오늘도 잘 지내보자고 다짐한다.
주수가 중반을 넘어가면 만삭사진을 찍는다. 만삭에 찍어서라기보다 움직임이 힘들지 않고 어느정도 배가 나온 주수에 찍는 게 만삭사진이란 걸 임신하고 알게 됐다. 처음으로 누군가 찍어주는 둘이 아닌 셋인 가족사진. 묘한 감정이 든다. 30주가 넘어가면 백일해 주사를 권하는데, 아기와 접촉할 식구들도 맞도록 권장한다. 그 말을 시댁에 알려드리니 우리 부부보다 더 빠르게 주사를 맞고 온 가족들을 보면서 한참 귀여웠다. 가족들이 모두 기다리는 우리 아기가 받을 사랑이 많아서 좋았다.
서울시 거주 6개월 이상, 12주 이상의 임산부에게 교통비가 주어진다. 서울에 이사 오고 아기를 가졌더니 20주가 넘어서 받을 수 있었다. 임신 내내 어쩌면 가장 기다렸다. 육아휴직으로 월급이 줄었던 내게 움직임은 곧 돈이었다. 그런 내게 부담을 덜어주고 날개를 달아준 지원이기 때문이다. 근거리만 돌아다니거나 산책하거나, 아주 가끔 KTX 특실로 여행을 다녔던 내게 교통비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 자차로 편하게 다닐 수 있다는 뜻이다. 더 이상 임산부석을 찾아다니거나 지하철에 끼여 휘청거리지 않아도 되었다.
교통비가 들어온 날 나는 친정인 부산으로 차를 가지고 갔다. 가족들과 편하게 차로 돌아다니고, 돌아올 땐 뒷자리 전부 언니가 물려주는 아기용품으로 가득 채워왔다. 아기용품들은 생각보다 값이 나가고 중고거래도 한계가 있는데 한가득 실어 온 아기용품에 마음이 풍족했다. ‘단순한 교통비가 아니라 집 안에 주로 있는 내게 답답함을 덜어주어 우울하지 않게 해주고, 최대한 육아용품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서 비용절감이 됐구나.’
이후로 우리 부부는 아기가 나오기 전 둘만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차로 여행을 자주 다닌다. 그 여행이 주는 기쁨이 셋이서 함께 느끼는 순간이라 너무 좋다. 날이 갈수록 배가 나오고 다리가 붓고 피곤하고 어지러울 때가 많은데 힘들면 바로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차가 있었다. 천천히 우리 아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지금이 아닐까.
매 주마다 바뀌는 상황에 맞춰 신기해하며 공유하고 다시 익숙해지고, 함께 교감하며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아기가 태어나면 임신 내내 정말 행복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널 기다리면서 정말 행복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