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자주 뉴스에서 접하게 되는 내용 중 하나가 ‘인구 감소 · 출산율 역대 최저’ 등과 같은 내용입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늘날 인구 감소 현상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로 인해 얻게 되는 ‘세상 살 맛’이라는 것을 소소하게 나누어 보고자 글을 잇습니다.
저는 2009년, 29살의 나이로 결혼을 했습니다(아내는 저보다 한 살 연상인 30살입니다). 대부분의 신혼부부가 그렇듯 저희 부부도 신혼의 달콤함을 1년 정도는 가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 가운데 아이가 생긴다면 감사하게 생각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흐르고 또 1년이 지났습니다. 주변에서는 조금씩 우리 부부를 향해 “아이는 언제쯤 가지실 거예요?”라는 질문들을 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곧 가져야지요.”라며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또 1년이 지나갔습니다.

나의 세상 살 맛, 아이들. ⓒ안O성
결국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기’의 소식은 없었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산부인과를 찾았고 저와 아내 둘 다 불임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검사 결과 둘 다 특별한 이상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불안해졌습니다. 원인이 있으면 치료라도 해 볼 텐데. ‘난임’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일어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 데 그것이 현실이 되고 보니 참 많은 생각의 교차가 일어났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인공 수정’을 권해주셨습니다. 아내와 상의 끝에 진행하기로 결정을 하고 첫 인공 수정을 시도했습니다. 인공 수정의 준비 과정과 무사히 착상이 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참 묘했습니다. 남편인 저도 이러한 데 ‘막상 시술을 받고 기다리는 아내의 심정이 어떨까’, 참으로 고맙고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던 착상은 실패를 했습니다. 기대와 다른 결과에 그 허탈함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시험관 아기’를 해보자고 권하셨지만 저희는 엄두를 못 냈고 결국은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한 번 더 인공 수정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심적인 고통. “무엇이 더 큰 고통이다.”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당시에 저희에게는 심적인 고통, 즉 ‘이번에도 착상이 안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의 고통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결국은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인공 수정도 실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실망감을 뒤로 한 채 아내를 위
로하며 ‘괜찮아. 둘이서 재미나게 살지, 뭐.’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한 해가 또 지나갔습니다. 결혼한 지는 7년이 지나 2016년이 되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 소소한 행복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기’를 포기했던 저희 부부에게 생각지도 못한 깜짝 선물이 찾아왔습니다.
2016년 2월 10일. 평소와는 미묘하게 다른 몸 상태를 감지한 아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태기를 구매해 검사를했습니다. 그리고 나타난 임태기의 ‘두 줄’, 저희에게 ‘한 줄’과 ‘두 줄’은 너무도 멀리 있어 그토록 보고 싶었던 ‘두줄’이었습니다. 나중에 아내가 말해주길 ‘자신이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른다고 한참을 쳐다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 나 임신 한 것 같아요.’
순간 울컥했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동안 잠들어 있던 내 심장이 이제야 뛰는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심장의 두근거림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세상 살 맛’이었습니다. 7년이 지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제처럼 그 순간이 생생합니다. 아마도 제가 죽는 순간에도 그 순간은 기억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의 죽음과 아기의 탄생’은 연결이 되나 봅니다.
이후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 아내와 산부인과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임신이 확실하다.’는 확답을 들었습니다. 그 대답을 듣기 전까지도 ‘아니면 어떡하지? 임태기가 불량이었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로 불안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 다시 병원을 찾아 초음파를 진행하던 중 또 한 번의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어머나, 쌍둥이네요. 축하드려요.” 의사 선생님의 믿을 수 없는 말을 듣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7년 동안 오지 않던 천사가 둘씩이나 찾아왔습니다. ‘내가 쌍둥이 아빠가 된다니’ 실감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기쁨이 두 배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세상 살 맛’이었습니다.
쌍둥이를 ‘육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들의 육아 고충을 누구보다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상 속의 육아와 실제 육아의 차이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잠재우기 위해 서로 한 명씩을 안고 ‘둥가, 둥가’를 하고 잠들었다 싶어 내려놓으면 기가 막히게 알고 다시 울어버리는 천사들. 일명 ‘등 센서 발동’ 그러면 어김없이 다시 안아야 하는 일들의 반복. 그러한 시간들을 통해 ‘나의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 키우셨구나. 나도 그냥 큰 것이 아니었구나.’를 생각해 보며 조금은 성숙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세상 살 맛’이었습니다.
그렇게 기적처럼 저희에게 와 무럭무럭 자라줘서 쌍둥이들이 현재는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습니다. 자라면서 고집도 생기고 자기의 주장도 생기는 아이들의 모습에 지지고 볶고 재미나게 지내고 있습니다. 둘이 아닌 넷의 소소한 일상의 행복, 이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네 번째 ‘세상 살 맛’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경제적 걱정으로,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이 없어질까 봐, 또 누군가는 오늘날 사회의 위험성 때문에 그리고 저희처럼 ‘난임’에 의해서 등등. 여러 개인적 상황에 의해 점점 아이들의 웃음과 활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잣대와 생각을 바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이유’가 되게 해주는 소중한 아이들입니다.
중국 당나라 때의 한 시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왜 천 년의 근심으로 사는가!”제 자신을 돌아보니 이기심과 욕심으로 근심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그것들을 조금 내려놓고 한 명의 인격으로 아이와 소통한다면 그게 바로 나에게 가장 가까운 행복의 이유이며 ‘세상 살 맛’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살 맛 나는 세상’을 회복하다보면 아이들의 웃음꽃이 다시금 만발하는 봄이 찾아올 것이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