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푹 빠져 사는 건 타임슬립 회귀물 웹툰! 한 두개도 아니고 심지어는 캐시까지 질러가며 다른 비슷한 작품들을 찾는다.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미래의 잘못들을 하나씩 바꿀 때의 짜릿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왜 이런 장르를 좋아하게 됐는지 스스로에게 질문 던져본다. 아마도 나는 지금을 후회하고 있는 걸까? 내 소개를 하자면 회귀물의 주인공과는 아주 거리가 먼 대한민국 현실 <임신+출산+육아>의 주인공이다.
아기의 컨디션에 당일의 희로애락이 달려 있는 어찌보면 흔한 엄마. 현재 20개월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이 27살, 남들보다 빠른 결혼 탓에 어느순간부터 내 별명은 “젊은엄마”로 불렸다. 오늘도 예외 없이 찾아온 낮잠 시간에 아무리 재워봐도 보란듯이 쌩쌩하게 놀다가 결국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눈 비비며 잠들어버리는 너가 가끔은 밉다고 말해도 될까? 자정까지 나를 들들 볶을게 분명함에도 그저 몽실몽실한 엉덩이를 토닥일 뿐이다. 너의 낮잠 시간만이 유일하게 또 다른 세상을 둘러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니까.
밀린 설거지와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고 나서야 휴,한숨 돌린다. 오래간만에 잡은 스마트폰은 자연스럽게 인스타그램으로 이끈다. 그 속에 #벚꽃이 이렇게나 이쁘다는 글, 멋진 몸매 자랑하는 #바디프로필 사진, 잔뜩 멋지게 꾸미고 간 #전시회와 #칵테일바 등...불과 몇 년 전까지 나도 홍대,건대, 로데오거리를 누비며 오늘만 살 것처럼 즐기던 때가 있었다더라. 쭉 피드를 내려보니 퇴근 후 즉흥적으로 만난 친구들의 술자리 인증샷이 보였다. '아... 또 나 빼고 모였네.' 단톡방에 다 같이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느낌이다. 어릴적부터 친했던 우리는 겨우 이런 걸로 우정을 의심할 사이가 아님에도 속 한편이 아리다. 어차피 나를 불러봤자 못 나간다는 생각에 연락을 하지 않은것이다.
그래, 내가 예상했던 일이기에 나는 섭섭해하면 안 된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은 왜 따라주지 않을까. 친구들이 올린 게시물 하나에 갑작스레 사색에 빠진다. 아마 그랬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는 바야흐로 24살 11월 회식에서 과음해 요란스럽게 잠을 설쳤던 밤이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출근했는데 평소에 시달리던 숙취라기엔 몸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같이 일하는 언니가 안색이 너무 안 좋다며 어디가 아픈 거냐고 물었다. “유난히 춥고 더부룩해. 아랫배가 쑤시고 당기는 게 너무 아프고 신경 쓰여” 증상을 얘기했더니 혹시 임신 아니냐고 묻는 말에 뇌리에 스치듯 어느 하루가 떠올랐다. 이상하다? 피임 도구도 잘 썼고 그렇게 서로 열정적인 날도 아니었는데? 예전에도 불안한 마음에 테스트기를 사용하면 ‘역시나 그럼 그렇지’로 마무리 되었기에 오늘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어... 어??? 어? 어??? "이게 왜 두 줄이야!"
너무 놀라서 육성으로 말이 튀어 나와버렸다. 3개 연속으로 해봐도 두 줄이었다. 하늘이 노랗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때 알았다. 내 남자친구는 같이 일하는 나보다 11살 많은 직장 상사였다. 이 사실을 알려서 처음에 당황스러워 했지만 내심 기뻤던건지 꼭 낳자고 결혼하자며 끈질기게 나를 설득했다. 절대적인 비혼 주의였기에 피임에도 아주 민감했고 절대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 여기던 가치관은 어느새 어물쩡하게 넘어갔다. 내 마음이 어떤건지 스스로도 모르면서 배는 서서히 불러왔고 결혼식은 뒤로 미룬채 혼인신고를 먼저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남자친구와 나는 연애 4개월 만에 부부가 된 것이었다. 짧은 연애 탓에 서로를 너무 모른채 결혼한 게 흠이었을까? 연애할 때는 무한 긍정적인 성격에 한없이 반했었다. 허나 같이 살고 보니 발등에 불똥 떨어지는데도 여유있는 그 모습이 날 미치게 만들었다. 크게 한방 노리는 걸 좋아하는, 이리도 대책없는 사람이였던걸 왜 미리 알아보지 못했을까? 꽃길만 걸을줄 알았던 결혼생활은 그야말로 불꽃길 이였다. 원래 그가 지고 있던 엄청난 빚과 한탕함을 만삭돼서야 깨닫게 된 것을 후회했다. 되돌리기엔 늦었고 모두 아둔한 내 잘못이라 생각했다. 이왕 낳기로 한거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들기 싫으니 모든 상황을 안고 가기를 택했다.
내 어린 시절은 순탄치 못 했기에, 4살부터 엄마 없는 한 부모 가정의 폭력적인 아빠 밑에서 제대로 된 애정 한번 못 받고 상처만 받은 날들이 아직도 날 괴롭힌다. 아빠는 나와 오빠를 직접 때리지 않았다. 대신 허구한 만취해서 집안의 모든 물건을 욕하며 깨부술뿐이었다. 처참하게 깨진 가구들은 왠지 우리 모습 같아서 항상 몰래 울었었다. 365일 내내 아빠친구들이 집에서 술자리를 가지며 들끓은 게 20살까지 지속되었다. 사춘기 때도 내 마음대로 샤워 한번 못했고 방문도 제대로 안 잠겨 아저씨들이 멋대로 들어올까 전전긍긍 하며 잠 설치는 날들이 지긋지긋해서 고1부터 일 시작하며 모은 돈과 카드대출을 기반 삼아 21살에 독립했다.
이렇게 제대로 된 관심도 못 받고 자라온 내가 내 아이를 온전히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출산의 무서움보다 진심으로 아기를 사랑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 이제서야 구원이라 여기던 나만의 가정은 어쩌면 더 깊고 슬픈 심연이겠구나. 자유롭게 살고 있는 내가 발목 잡은거같은 너를 은근히 미워하는 게 느껴졌을까? 출산 일주일 전까지 근무하며 쉬지도 않고 몸을 가혹하게 해도 내 눈치를 보듯 신경 쓰지 말라며 열 달 내내 건강하게 있어 줬고, 태어난 당일에도 고생하지 말라는 듯 유도 분만 주사 후 무려 3시간 만에 나와준 기특한 아기였다. 이렇게 생긴 게 말이 되나 싶을정도로 우리의 좋은 점만 쏙 빼닮은 하얗고 말랑한 감자였다.
내 자식인데 미워하면 어떡하지? 모성애가 안 생기면 어떡하지? 하던 걱정들이 무색하게 가슴속 깊은 곳에 무언가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엄마처럼 널 떠나지 않고 끝까지 지켜낼거라고. 세상 모든걸 줄 수는 없어도 당연하게 받고 자라야 할 지원들 이 한 몸 부서지더라도 다 해줄 거라고. 이 글을 쓰면서 지금도 왈칵 눈물이 난다.
그때의 감정 그리고 다짐. 내가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온 건 너를 만나기 위함이었구나. 경제적인 문제가 녹록지 않은 건 여전하지만 달라진 건 꺾이지 않는 줏대. 어떤 상황이 닥쳐도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중이다. 굳센 사람이 되는 과정은 혼자가 아닌 많은 도움을 받아야 가능한 것이었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 마을하나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그 말에 절실히 공감한다. 시부모님과 지인들도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의외로 국가에서 실속있는 도움을 받고 있음을 느꼈다.
아이돌봄 서비스와 어린이집도 짐을 덜어주는데 한몫 했지만 무엇보다 너무 지쳐 다 놔버리고 싶었을때 '서울 아기 건강 첫걸음 사업'에서 나오시는 박 선생님께 많이 의지했다. 한때는 아기를 낳은지 얼마 안된 산모라 산후우울증도 심하고 몸도 안좋았으며 엎친데 덮친격으로 코로나 제일 심할 시절에 코로나 걸려서 혼자 2주동안 센터에 다녀온적이 있었다, 만나자 마자 고생 많았다며 꼭 안아주셨다. 눈가는 촉촉하셨고 나는 엉엉 목놓아 울었다. 그 분과 감동적인 포옹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공모전도 선생님이 알려준 덕분에 시간 내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일도 하는중이라 육아 정보가 부족한 나를 위해 이것저것 알려주시고 공적인 방문 외에도 계속 아기와 나의 건강, 기분을 물어보시며 친정 언니처럼 살펴주신다. 이 사업은 아기가 24개월이 되면 종료 되는데 박선생님과 나는 그 후에도 연락하고 지내기로 약속했고, 남편과 무슨일이 있거나 아기가 아플때마다 연락할만큼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선생님과 만나는 날이면 나의 외로운 어린 시절을 돌봐주는 기분이 들어 참 애틋해졌다.
이제 나한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하고 든든한 아군을 서울시에서 만들어 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렇게 나한테 힘이 되는 분들과 아기의 얼굴을 보며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본다. ...아, 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제 우리 집 상전이 낮잠에서 슬슬 깨려나보다. 잠깐 사색에 빠졌던건데 두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내행동은 점점 빨라져가고 한없이 서툴기만 했던 나도 이제 제법 프로 엄마 태가 난다.
오늘따라 밥도 뱉어내는 거 없이 잘 먹으며 웃어주는 게 꼭 내 기분을 아는 거 같다. 작고 귀여운 입술로 오물오물 거리며 본인이 먹던 음식을 나한테 먹어보라며 건네는 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밥이랑 후식 다 먹고 조금 놀아주다 보니 슬슬 육아의 꽃 목욕시간이 다가왔다. 씻기며 문득 쳐다본 거울 속엔 떡 진 머리, 축 늘어진 가슴과 자꾸 칙칙해지는 얼굴이 보인다. 나이도 젊은 내가 기침 할때마다 조금씩 소변이 새는게 속상한데도 어디 말할곳도 없더이다.
살도 20kg를 넘쪄서 그걸 감량하는데 꼬박 6개월이 걸렸다. 처음엔 이런 변화들을 받아드리기 어려워 우울증이 심하게 왔었지만 지금에서야 소중한 아기와 나의 원래 미모를 등가교환 했다고 생각든다. 치열한 하루가 다 가고 자기전에도 절대 편하게 자주지 않겠다며 난리를 피우는 놈이였다. 벌써 밤 11시라 슬슬 화나지만 마음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자장, 자장 부드럽게 계속 노래불러주니 어느새 스르륵 눈이 감겼다.등을 다독다독. 몇 번씩 하고 깊게 잠든 걸 확인하고서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기다릴 테니까 지코바 사와 같이 한잔하자'
여전히 돈덩어리 애물단지인 미운 남편이지만 이 사람은 내가 선택한 내 사람이다. 지금은 정신 차렸는지 어떤지 그 속은 아내인 나조차도 모르겠지만, 퇴근하고 와서 자고 있는 내발을 열심히 주무르고 있는 남편을 자는 척 보고 있자면 그냥 피식하고 웃음만 나온다.
내가 항상 남편한테 하는 소리가 있었다. 당신은 마치 나한테 왼손 같다고. 오른손만 혼자 쎄빠지게 일하는데 옆에서 속 편하게 쓸모없어 보이는 다른 손. 그렇다해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되는 나의 반대 손. 마주쳐야 소리가 날수 있는 나의 손바닥이라고. 철딱서니 첫째 아들 내 남편이 부디 앞으로 꾸준하고 절제 있는 가장이 되어 아내가 자꾸 뒤돌아보지 않게 해주길 바랄 뿐이다.
자유시간을 만끽하며 남편이 치킨을 들고 오기 전까지 엄청 좋아라하는 “과거로 돌아가 새인생 잘사는 내용”의 웹툰을 또 정주행하고 있다. 그래, 자기위로 하며 아니라 했지만 비로소 내가 만든 인생을 후회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아주 만약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 신이 나에게 "기억 그대로 네게 과거로 돌아갈 기회를 주겠다" 하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돌아가겠습니다. 대신 반복하고 후회한대도 그 선택은 똑같습니다."
지금의 남편을 다시 찾아갈 것이고 하나뿐인 나의 아기를 꼭 다시 만날 것이다.
대신에 부를 많이 축적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제대로 맞이해주고 싶은 게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다. 남들이 나 보고 미련하고 멍청하다고 말한다. 나도 잘 알고 있으니 그만 말해도 된다. 이제 내 가족이 아니면 안 되는 걸 어쩌나 싶다. 지금 이 사람을 다시 만나면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지는데 괜찮은 거냐고 묻는다. ‘안 괜찮아 또 다시 많이 힘들겠지.’ 하지만 우리 아기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고. 그렇다면 본질적인 질문을 하나 더 던져본다.
“지금의 나는 행복한가?” 글쎄 그건 아닌거 같은데...현재 경제적으로도 몸과 마음 모두 너무 힘든데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내려 앉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아주 잠깐씩 기분 좋은 게 끝인 삶이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수 있는건가? 음, 통장 잔고에 10억쯤 있으면 행복할거 같기도. 평소에도 혼자 고심하고 상상하는 일이 많았다. 어렸을 땐 이게 참 장점이었는데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시간 낭비처럼 느껴진다. 또 이런저런 깊은 망상에 빠지려 할 때쯤, 저 멀리서 자고 있던 우리 아기가 잠꼬대로 까르륵 까르륵 웃는다. 그 소리가 너무 간드러지고 예뻐서 바로 후다닥 곁으로 갔다. 한 번 더 잠꼬대 하지 않으련지 두근두근하며 지켜보고 있다. "쬐끄만한게 무슨 좋은 꿈을 꾸는지..."
곤히 잠든 우리 아기 속눈썹에 입을 살짝 맞추고 나니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아...그랬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하고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