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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입선] 아빠라서 행복한 나의 이야기(최O식)

관리자 2023.04.26 17:52 조회 43
아이가 태어난 후 아주 오랜만에 나간 술자리에서 저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던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왜 아이를 안낳으려고 해?"

제 질문에 친구는 잠시 고민하는 듯 싶더니 이렇게 대답을 해왔습니다.

"나는 지금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즐거운 술자리에서 가볍게 물어본 질문에 가볍게 돌아온 대답인지라 당시에는 친구의 대답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오랜만에 만나 더 각별했던 술들을 비우는데 집중했습니다. 그렇게 아내의 배려로 즐겼던 하루의 비일상을 보내고 저는 육아의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침 6시에 아이가 깨면 같이 일어나 아침을 먹이고 함께 놀아주다 출근을 하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다시 아이와 놀아주고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재우고 난 뒤에는 하루동안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을 닦고, 먹었던 젖병과 이유식기를 씻고 나면 어느덧 다시 내일을 위해 잠들어야하는 하루 하루의 일상으로요. 그렇게 비슷한 일상을 보내던 와중에 문득 친구가 한 말을 곱씹어보게 되었습니다. 

'우진이가 태어나서 나는 나의 삶을 포기했나?'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삶을 복기해보면, 저는 참 놀기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좋아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번은 친구들, 가족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시간가는 줄도 모른 채 밤 새 이야기를 나누고, 주말이면 아내의 손을 잡고 요즘 유행한다는 맛집에 가거나, 시기에 맞추어 전시회를 가거나, 훌쩍 멀리 즉석 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그러다 피로함을 느끼면 아무데도 나가지 않고 조용한 집에서 좋아하는 게임을 밤새 하거나 가만히 앉아 좋아하는 만화책을 읽고는 했고요.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친구들과의 만남은 고사하고 아내와 외식을 한 햇수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이고, 아내와 돈독한 사랑을 넘어 육아라는 전장을 함께 헤쳐나가는 전우애를 다지며 육아에 전념하고 있기에 유행에 민감했던 우리 부부의 사진첩에는 어느새 아이 사진만 가득해졌습니다. 집에서도 아이에게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으니 좋아하던 게임기와 만화책은 모두 먼지만 쌓여가고 있고요. 돌이켜보니 제가 아이가 태어나기 전 좋아하던 행동들은 거의 할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의 말이 이해가 가더군요. 정말 기존의 삶을 포기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제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삶을 다시 즐길 수 없게 되었지요. 아이를 재운 후 sns를 켜보면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참 재미나고 멋진 삶들을 살고 있더군요. 그에 반해 어딜가든 수유실 위치부터 확인하고 허리에는 아기띠를, 어깨에는 이유식 가방을 둘러맨 제 모습을 거울로 볼 때면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지금의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고 가장 처음 같이 보러 간 영화인 '어바웃 타임'에서는, 시간 이동이 가능한 주인공이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과거로 돌아가 과거를 다시 만끽하고 돌아오곤 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예기치 못한 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는 언제든지 과거로 돌아가 건강했던 아버지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죠. 하지만 문제는 사랑하는 아이가 태어난 후 생깁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과거로 돌아가 과거를 바꾸게 되면 미래도 바뀌어 나의 아이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된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오랜 고민 끝에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와 따뜻한 이별을 하고 아이와 함께 현재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당연히 저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없지만,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을 제 삶에 대입해보곤 합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나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러 매일같이 과거로 돌아갔을텐데, 즐거웠던 순간들은 여러번 다시즐기고, 후회하고 있는 선택들은 다시 고쳐 선택했을텐데. 그 즐거운 상상의 마지막은 항상 나도 결국엔 주인공과같은 선택을 했겠지로 끝이 납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300여일이 지난 지금 저는 아이가 없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분명 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고, 즐기던 일들을 더 이상 즐기지 못하지만, 저는 지금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생아실의 유리벽을 중간에 두고 쌔근쌔근 숨을 쉬며 누워있는 아이를 보며 핏덩이 같은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하나 하던 막막한 마음을, 우리의 품에 와준 이 아이를 잘 키워보자는 결연한 의지로 다잡던 순간이 아직 생생합니다. 그렇게 누워서 숨만 쉬던 아이는 처음으로 눈을 떠 엄마 아빠를 바라보고, 처음으로 웃고, 처음으로 앉고, 첫넘어짐도 경험하며 바지런하게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신생아실 속 작은 아이가 하루 하루 성취를 이루며 성장해 어느새 퇴근하는 저를 웃으며 마중나오는 모습을 보고있자면 행복을 넘어 경이로움까지 느낍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는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는 모든 것을 해줘야하는 역할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오히려 제가 아이에게 구원받고 있음을 느낍니다.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부족한 아빠를 온 세상인 것처럼 티 없이 맑은 눈길로 바라봐주고 웃어주는 아이를 보고있으면 이 세상에 살아있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하던가요. 안에서 새던 행복은 밖에서도 여지없이 흘러나옵니다. 아이가 나타나면 저 뿐 아니라 주변 모두의 칙칙한 회색빛이었던 세상이 색채로 다시 가득해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고개 숙인 채 작은 화면 속 세상에 집중하기 바빴던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아이의 웃음 하나로 모두 웃음꽃이 피고 자연스레 이웃의 안부를 묻게 됩니다. 이 아파트에 살게된지도 벌써 4년차인데 지금에서야 아파트 이웃들을 하나 둘 기억하고 먼저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뿐일까요. 가게에 들어설 때도, 판매자와 구매자라는 차가운 관계는, 아이의 웃음 하나로 시시콜콜한 잡답을 나누는 가까운 친구같은 사이가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내가 먼저 문을 닫고 살아 차게 식었던 사회를 따듯한 웃음과 색채로 가득차게 만드는 아이란 어쩌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낳기로 하기 전에 아빠로서의 삶이 두렵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잘 해낼 자신도 없었고요. 아이를 낳기전에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나 글들을 봐도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의 전부를 가진 기분이라던가,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가 한번 웃어주면 모든 피로가 풀린다던가. 모두 한번 시작하면 중도 하차는 없는 육아의 길을 버티기 위한 일종의 암시와 같은 말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아이를 보고 있다고 세상의 전부를 가진 기분은 아닙니다. 세상은 많이 넓습니다. 육아는 현실입니다. 원하는만큼 잘 수가 없으니 항상 피곤한 상태이고, 아이에게 집중하다보니 그 외에 중요한 것들에 소홀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금전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저희는 맞벌이 부부입니다. 현재 아내는 아이를 낳고 육아 휴직 중에 있지요. 가족은 늘었는데 수입이 줄 다 보니 금전적인 압박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육아 휴직 중에도 육아 휴직 급여를 받고 있어 아이가 필요로 하는 부분들은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죠. 물론 기존 급여보다는 적기 때문에 지출을 열심히 줄이고 있지만요. 아이 관련제품들은 보통 꽤 값이 나갑니다. 특히 장난감류는 10만원이 훌쩍 넘는 경우도 허다한데, 큰 맘 먹고 아이를 위해 비싼 장난감을 사도 아이의 취향에 맞지 않거나 아이가 금방 질려하는 경우들이 있어 난감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종종 서울시 육아 지원 센터에 들러 아이 장난감을 대여해오곤 합니다. 다양한 장난감을 저렴한 가격에 빌려 아이가 흥미를 잃을 때까지 놀아줄 수 있어 저희 가족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아이를 키우며 꽤 많은 순간 자금의 압박을 받게되겠지요. 하지만, 아이가 저희에게 주는 행복감은 그러한 문제들을 초연하게 마주하고 이겨낼 힘을 주기에 더 열심히 힘내서 살아갈 겁니다. 물론 서울시의 엄마아빠 지원 항목들도 항상예의주시하며 놓치지 않고 활용하면서요.

제 친구는 말했죠, 현재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 제 경우에는 아이를 낳는 것은 현재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삶의 거의 모든 방향이 바뀌었고, 그 전에 즐겼던 많은 부분들을 즐기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삶의 다음 행복으로 넘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전 행복했습니다. 아내를 만나기전 학창 시절엔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웠고, 아내와 연애 시절엔 주말마다 서울 곳곳을 탐방하는 것이 즐거웠고, 아내와 결혼 후 신혼 때엔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함께하는 술 한잔이 행복했습니다. 지난 순간들이 그립지만, 저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현재는 아이와 함께하는 삶이 그 어떤 순간보다 더 행복하기 때문이지요.

'숨결이 바람 될 때'의 작가 폴 칼라니티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어린 딸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우진아, 우진이가 엄마 아빠 곁으로 와준 것만으로도 아빠의 삶은 완성이 된 기분이란다. 우진이가 아빠에게 이미 준 기쁨은 정말 평생 느껴보지도 못한 커다란 기쁨이었단다. 우리 가족이 되어줘서 너무 고맙고 아빠랑 엄마는 네가 크면서 더 많이 웃으며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할꺼야. 우리 가족 다 같이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자. 사랑해, 우리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