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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입선] 우리의 건빵 행복에 직빵(심O슬)

관리자 2023.04.26 19:26 조회 65

 내 나이 만 28세. 이르다면 이르고, 적당하다면 적당할 나이에 아무런 계획도 없이 찾아온 우리의 건빵이. 온갖 매스컴을 통해 어마어마한 출산의 고통을 막연히 짐작하고 있던 제게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은 급작스레 다가온 소중한 생명이자 앞으로 닥쳐올 엄청난 두려움이기도 했죠. 그래서 저는 아이의 태명을 ‘건강하게 한 방에, 엄마 속썩이지 말고 알아서 잘 나와다오!’ 하는 마음으로 ‘건빵이’로 짓게 되었습니다. 


탈 많고 겁 많은 제게 건빵이의 임신은 하루하루가 우여곡절로 가득했는데요. 임신 사실과 동시에 알게 된 코로나 감염부터 시작해 5주부터 바로 시작된 입덧, 태어나 처음 겪어본 방광염의 고통, 체력의 저하와 호르몬으로 인해 잔뜩 예민해진 성격까지. 그토록 사랑하던 남편이 그때는 왜 그리 역한 냄새가 나는 아저씨로 느껴졌는지, 입덧이 한창 심할 때는 옆에도 못 오게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 좋아하던 떡볶이도 치킨도 입에도 못 댈 정도로 심해진 입덧은 하루하루 아침에 눈 뜰 때마다 다음날이 안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렇게 나름 고생스러웠던 임신 기간을 거치고 작년 11월, 드디어 건빵이와 첫 만남을 하게 되었습니다. 척추에 연결한 줄이 빠져 무통주사액이 줄줄 샌 저는 쌩 진통을 느끼다가 건빵이가 나오기 직전 다시 무통 주사를 맞고 나도 모르는 새에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는데요. 양수 안에서 퉁퉁 불어 외계인같은 얼굴을 하곤 온 몸에 힘을 주며 빼액 우는 건빵이를 보며 처음 든 생각은 ‘아, 살았다’였습니다. 양가 부모님을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 양수가 터진 뒤에도 아무 연락을 않던 저는 그렇게 출산을 마친 뒤 소식을 전하게 됐죠. 그렇게 건빵이는 그 날 후로 우리 집의 ‘귀남이’가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훨씬 모성애는 강하다는 것! 솔직히 임신 기간만 해도 막달까지 끝나지 않던 입덧에 고통받던 저는 ‘나오기만 해봐라, 어떤 애인지 얼굴 한 번 보자’하고 벼르는 마음도 없지 않았어요. 그런데 출산하고 신생아실에서 만난 건빵이의 모습은 상상 그 이상으로 가슴 벅차게 사랑스러웠습니다. 세상의 어떤 풍파도 너만은 비켜 갔으면! 너는 그 어떤 고통도 상처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나왔죠. 문득 부모란 이런 마음일까,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마음도 이랬을까? 하며 눈물 짓던 날들도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그건 산후우울증의 시작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출산을 겪은 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경험한다는 산후우울증. 평소 긍정적이고 씩씩한 편인 제가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정말 몰랐죠. 갓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보며 ‘엄마가 지켜줄게!’ 하던 저는 ‘혹시라도 아이를 다치게 하면 어떡하지?’ ‘저 작은 아이를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엄마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앞으로 나의 직장생활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수많은 생각들로 하루하루 정신도 몸도 약해져 갈 뿐이었습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남편의 작고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불같이 화를 내며 꼬투리 잡고 극단적인 표현들도 서슴지 않고 했던 거 같은데요. 아마 두려운 생각들과 함께 한창 안 자고 보채는 아이를 밤새 돌보며 체력적으로 지쳐 예민해졌던 탓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 후 얼마 뒤, 우울증이고 뭐고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건빵이의 ‘서혜부 탈장’. 특히 남아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는 서혜부 탈장은 크게 위험하지 않고 간단한 수술로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50일도 채 안 된 건빵이의 기저귀를 갈다가 탈장을 발견한 제게는 청천벽력같은 일이 아닐 수가 없었는데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즉시 수술하지 않으면 장이 꼬이는 감돈 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수술 시에는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잔뜩 나와 그 날 새벽을 눈물로 지새웠던 기억이 납니다. 왜 이걸 이제야 알게 된 걸까, 나는 참 무심한 엄마구나 하며 스스로를 크게 자책하기도 했죠. 그렇게 저는 다음날 바로 집 근처 소아과에서 소견서를 떼 대학병원을 예약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학병원 예약 후 방문하기까지도 순조롭지는 않았어요. 바로 남편과의 사소한 의견충돌이 화근이었는데요. 남편은 돌 전에는 탈장 부위가 닫힐 수도 있다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를 거부했습니다. 수술시키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로 말이죠. 병원에서는 감돈 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니 빠르게 갈 것을 권유했지만, 뻔히 그걸 알고도 아이 수술을 시키기 싫다며 병원에 가지 말자는 꿈같은 소리를 한다니. 병원에 가네 마네 실랑이를 하며 말다툼을 하던 저희는 급기야 아이 앞에서 큰 소리를 내며 격한 싸움을 하기도 했답니다. 울지도 않고 찬찬히 엄마 아빠를 바라보던 건빵이의 모습이 지금도 훤해 그 날을 생각하면 어찌나 미안한 마음이 들던지요.


갈등 끝에 대학병원에 가 수술을 대기하던 그 날. 아기용 환자복을 입고 아무것도 모르는 들뜬 얼굴로 엄마 아빠를 보며 방긋 방긋 웃어주는 건빵이의 모습에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하지만 엄마는 강해야 하니깐! 건빵이를 안심시켜 줘야 하니깐! 하는 마음으로 당시까지도 꼴 보기 싫던 남편과 함께 아이를 보며 응원해주고 많이 안아줬답니다. 남편은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와 하루 종일 병원에 있던 저를 집으로 보내고 본인이 건빵이와 함께 잠을 청하기도 했죠. 서로를 위해주는 부부가 이런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을 막연히 떠올렸던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자지도 깨어있지도 못하던 건빵이의 수술 날. 오전 일찍 수술이 잡혀있어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는데, 남편으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바로 건빵이의 간수치가 높아 수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 정상 간수치의 10배 이상 수치가 높아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는 소견이었습니다. 이 중요한 순간 내가 왜 직접 그 이야기를 듣지 않고 집에 와 퍼질러 잠이나 잤을까, 자책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택시를 잡고 병원으로 향했죠.


그렇게 건빵이를 안고 속으로 간절히 기도 하며 초음파도 찍고, 피검사를 통해 바이러스와 간염 검사를 하게 되었는데요. 결론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바이러스도 염증도 보이지 않는다! 단, 너무 신생아라 간 기능이 미숙할 수 있으니 우선 우루사를 처방받고 지켜보자’였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니,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하는 생각으로 가슴 아파하던 저였죠. 아마 모든 부모님이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내 아이가 아무런 문제도, 고통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들 똑같을 테니깐요.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건빵이는 100일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탈장 수술을 하지 못하고, 그 쓰디 쓴 우루사를 매일같이 챙겨 먹고 있답니다. 생각해보면 더 큰 탈이 없음에 감사한 일이고, 돌이켜보면 그랬던 적도 있었지 하고 추억이 될 일인데 당시에는 왜 그리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던지요. 채혈 할 때마다 온 힘을 다해 세상 떠나가라 울며 발길질을 하던 건빵이는 이제 제법 침착해지기도 했답니다. 굳이 익숙해질 필요 없는 과정에 익숙해진 게 마음 아프기도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세상의 매운 맛을 일찍 접한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 부부의 모습입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저는 짧은 기간 동안 산후우울증을 겪었는데요. 핵심적인 이유는 ‘억울함’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지, 왜 나만 손해를 봐야 하지, 왜 나만 사회적으로 도태되는 기분이 들지 하고요. 아마 모든 아기 엄마들이 이런 생각을 한 번 쯤은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사회가 출산한 여성에게 가혹한 것이 사실이기는 하니깐요.


하지만 그럴 때 남편의 태도는 아내를 천국에 살게 할 수도, 지옥에 살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의 남편은 다행히 천국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생을 살 수 있게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죠. 무심하게 회피하던 저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주고, 아이에게도 더욱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어요. 


그리고 제가 놓치고 있던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남편 역시 나 못지 않게 혼란스럽고 힘들었으며, 나름의 방법으로 그것들을 잘 이겨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산후우울증은 엄마에게만 오는 게 아니더라고요. 아빠들 역시 삶의 큰 변화로 인해 책임감이 막중해지고, 부담감 때문에 엄마 못지않은 우울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전에는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치고 박고 싸우고 격한 말로 상처를 줬지만, 노력하는 남편을 보며 지금의 저는 조금 더 남편을 이해하고자 애쓰고 위해주고자 노력하는 성숙한 아내가 되었답니다. 비단 저만의 노력이 아닌 남편의 노력이 이루어낸 결과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연애 시절 물컵 하나 제대로 놓을 줄 모르던 남자가 이제는 내 감정을 섬세하게 헤아려주기도 하다니,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하루하루 감사함을 느끼고 있답니다.


이렇게 ‘건빵’이의 탄생은 우리 가정의 행복을 ‘직빵’으로 가져다 주었어요. 아, 물론 라임을 맞추기 위해 직빵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지만 돌이켜보면 각자의 시간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건빵이는 건빵이대로, 저는 저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말이죠. 그렇게 비 온 뒤 땅이 굳듯 작은 시련이 우리 가정을 조금 더 단단하게 묶어줬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인데요.


인생은 그 누구도 하루를, 한 시간을, 매 분 초 시를 예측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계획대로 되는 일이 정말 하나도 없더군요. 변수는 늘 존재하고 그 변수 안에서 뜻밖의 행운을 발견하는 일도 많은 걸 보면 삶은 참 재미있는 거 같습니다. 그 안에서 남편을 만나고 건빵이를 만나 조금은 더 성숙한 인간으로, 단단한 여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요즘 제게는 가장 행복한 일인 거 같습니다. 


앞으로 더욱 우여곡절이 많을 테고, 한 때는 건강만을 바라던 건빵이에게 더욱 큰 걸 바라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상처받는 순간도 오겠죠? 그 때도 저는 건강만을 기도하며 사랑만을 주던 이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요즘에는 건빵이를 위한 일기를 쓰고 있답니다. 이 공모전에도 그래서 참석하게 된 거고요. 우리 가족의 행복을, 그리고 나의 일상을 지켜준 건빵이. 앞으로 ‘건빵이 엄마’로서의 고군분투가 기대되고 설레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