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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입선] 부모라는 이름(오O)

관리자 2023.04.26 19:36 조회 79

부모가 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동시에 행복한 일이다.
 
나는 두 아이의 아빠이다. 첫째 아이는 아내를 닮은 예쁜 다섯 살 개구쟁이 딸이고, 둘째는 나를 닮은 튼튼한 생후 10개월 된 귀여운 아들이다. 우리 부부는 처음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소위 딩크족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아내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고, 나는 그런 아내의 결정을 존중했다. 사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굉장히 큰 결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신혼부부 중에 아이를 꼭 낳아서 키워야 한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주거 문제부터 시작하여 교육비, 양육비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소득보다 집값이 더 빠르게 뛰니 안정된 주거를 갖기도 어렵고, 자녀에게 들어갈 비용을 생각하면 너무 어려운 삶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내 자신의 삶을 중요시하고 논리적인 요즘 세대에는 더더욱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아내가 아이를 갖자고 말했다. 결혼 3년 차가 되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기도 하고 아내의 의견도 존중하기에 그러마고 했다. 후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사촌 언니의 아이가 너무 귀엽고 예뻐서 아이가 갖고 싶다고 했었다고 했다. 첫째 아이가 찾아와준 날, 영화나 드라마처럼 기뻐서 미쳐 날뛰기보다는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역할을 부여받은 듯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임신 과정에서는 임신 바우처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기적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해야 했기에, 초음파 비용 등 비급여 부분이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보건소에서 실시해주는 검사나 엽산 및 철분제 지원은 사실 큰 도움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다 알아보고 영양제를 구입한 부분들도 있고 보건소 기본 검사에 대한 부분들은 병원에서 하는 게 더 편리하고 익숙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은 모두에게 혜택을 주기보다는 예산을 모아서 더 어려우신 분들에게 출산 비용으로 지원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는 출산 후 거의 필수적으로 선택하는 조리원 비용을 지원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첫 아이가 세상에 나오던 날, 산모와 아이는 많은 고생을 했다. 아이가 탯줄을 여러 번 감고 있어 산도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무사히 출산을 마쳤고, 산모도 건강했다. 아이는 고생을 오래 해서 거의 바로 회복실로 갔다. 그때까지는 사실 내가 부모가 되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 아기 같지도 않은 느낌이 들고. 그런데 그날 저녁 아내와 함께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잘 키워나갈까 이야기를 하다가 괜시리 눈물이 났다. 아직도 그 눈물의 의미는 잘 모른다.
 
첫째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좌충우돌이었다. 내 몸 하나 건사도 못하는 어른이 둘이 새 생명을 키우려고 하니 얼마나 어설펐을까. 두 시간마다 밥을 먹던 우리 첫째는 거의 우리를 초주검되게 만들었고 우리의 삶은 그 조그만 녀석에게 맞춰지게 되었다. 안고 많이 흔들면 뇌에 문제가 있다는데... 변을 못 보면 큰일난다는데.. 목욕을 조심스럽게 빠르게 해야 한다는데.. 하며 신주단지 모시듯 키워냈던 것 같다. 심지어 삼칠일(생후 21)까지는 아이를 데리고 외출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게 키우다 보니 나는 평생 걸려보지도 못했던 뇌수막염이 와서 약물치료를 했고, 아내는 면역력 저하로 피부질환과 정형외과 질환(손목, 허리, ...)을 달고 살게 되었다. 체력적으로 힘들다 보니 아내랑 다툼도 많이 했다. 나는 회사에서 그래도 2주의 출산휴가를 받았지만 출산휴가가 없는 직장은 참 힘들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둘이 고생하는 것과 혼자 독박으로 고생하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산모신생아건강관리 지원사업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모든 부모가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기보다는 자기 손으로 키우고 싶을 것이다. 이런 지원사업이 있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부모가 키울 수 있게끔 사회적인 제도 장치가 마련되면 참 좋겠다.
 
그렇게 힘든 과정이었지만 단 한 번도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나와 아내를 닮은 이 조그만 녀석이 우리를 알아보고 눈 마주쳐줄 때, 헤헤 웃으면서 쳐다봐 줄 때, 엄마아빠라고 어설프게 말하며 안길 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이런 건가 하는 건 아이를 낳아서 키워본 부모는 다 알 것이다.
 
그렇게 체력적으로 한계인 시기가 지나면 아이와 함께 웃는 시간이 많아진다. 아이가 스스로 혼자 앉아서 장난감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거나, 아이가 말이 트여서 생각지도 못했던 귀여운 말을 하거나, 좀 커서 율동을 배워와서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하게 되면 우리 가족 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서도 아이가 분위기 메이커가 된다. 아마 내가 태어나서 우리 부모님께 한 효도 중에 제일로 치는 것은 내 아이들을 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나니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바뀌었다. 유모차를 끌고 길을 가다 보면 턱이 있는 길을 올라가려면 많이 불편하고, 대중교통이나 시설을 이용할 때 엘리베이터가 멀면 또 불편하다. 또 아이들을 위한 이용처가 어떤 게 있는지도 관심이 많이 간다. 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내 아이가 살아갈 곳에 좋은 환경이 남겨져야 할 텐데 하고.
 
아이를 낳고 나면 스스로의 성장도 느껴진다. 내 한 몸만 챙기면 되는 게 아니고 항상 아이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아이가 짜증을 내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면 동등한 성인으로서 대하기보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공감해야하는 포용력도 필요하다. 부모가 함께 성장한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를 위한 많은 교육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낳았다고 부모가 아닌 이런 과정을 거쳐야 진짜 부모가 되는 게 아닐까.
 
둘째를 낳는 것은 진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미 우리에게는 아이가 있었고 아이가 하나 더 생기게 되면 사랑을 줄 때나 경제적 지원 부분이나 나눠주어야 하는 점이 마음에 많이 걸렸다. 그런데 둘째를 낳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다. 둘째에게는 미안하지만 첫째가 집에서 혼자 노는 뒷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또 우리 부부가 한평생 함께 살아줄 수도 없고, 우리가 떠났을 때 혼자 그 짐을 감당하기보다는 피붙이가 있어서 서로 의지하면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둘째도 다행히 건강하게 잘 찾아와주었고 첫째보다 훨씬 큰 녀석이었지만 고맙게도 잘 나와주었다. 아무래도 둘째다 보니 우리는 덜 예민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첫째 때는 울면 어떡하지 하며 허둥댔는데 지금은 그냥 마냥 귀엽고, 아이는 표현을 울음으로 하는 것을 알게 되니 더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둘째 녀석을 오롯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총알처럼 지나갔던 첫째의 귀여운 순간을 둘째는 더 오래 만끽하며 지내는 중이다. 처음 둘째를 낳고자 했던 것은 첫째의 이유가 있었지만 이제는 둘째 자체의 존재가 너무 소중하고 대체 불가한 아이로 인식이 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버둥버둥하며 겨우 앉고 헤헤 거리는 녀석을 보니 마냥 행복하다. 안 낳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내년에는 의정부로 이사를 간다. 서울에 연고가 있는 나로서는 계속에서 서울에 있고 싶고 아이들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만큼 여기서 살고 싶다. 그렇지만 주거비용이 최근 몇 년간 너무 올랐고 서두에도 얘기했듯이 소득보다 주거비용이 오르는 게 더 빠르다. 아이를 낳고 원하는 환경에서 키우고 싶지만 아이를 돌보아야 하니 소득은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부양가족은 늘어 소비는 늘어나니 서울에 있을 도리가 없다


많은 육아 지원 정책이 있지만 내 생각으로는 주거 문제가 결혼이든 출산이든 육아든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전문가와 똑똑한 사람들이 정책을 내놓아도 쉬운 문제가 아닌 게 대한민국 주거 문제라지만,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것을 심각하게 인식한다면 조금 더 시급하게 인지하고 좋은 정책들을 많이 만들어 내면 좋겠다. 출산율이 엄청 낮았다가 늘어난 다른 나라의 사례도 있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고 나와 내 배우자를 닮은 예쁜 아이들을 낳으며 편안한 공간에서 미래를 꿈꾸며 행복하게 사는 평범한 삶을 오늘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