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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우리는 오늘도 행복한 난청 육아중입니다(김O름)
관리자
2023.04.26 19:46
조회 75
“
난청입니다
.
정상인의
50%
정도만 듣는다고 생각하세요
.”
우리 아기가요
?
도대체 왜요
?
제대로 검사한 거 맞아요
?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얼굴로
,
온 몸으로 울고 있는 남편과 달리 내 속은 고요하게 휘몰아쳤다
.
맞았다
.
나는 대학 전공을 간호학으로 졸업했고
,
임상에서 워낙에 많은 케이스의 환자분들을 봐왔기 때문에 산후조리원에서 세 번이나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쪽 귀 이상 소견이 나온것에 대해 우리 가족들처럼
‘
괜찮을거야
.
이상 없을거야
,’
라며 마냥 부정할 수는 없었다
.
한 번은 검사가 잘못되서 그럴 수 있다지만 두 세번
‘
이상 소견
’
이 나올 순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그럼에도 어디선가 봤던 청력 이상 소견으로 대학병원에 진료를 오는 신생아 세명 중 두명은 정상 소견을 받는다더라
,
나머지 한 명 정도만 난청 진단을 받는다는 글을 보고선 제발 우리 아기가 그 정상소견을 받는 두 명에 속하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
망연자실한 얼굴로 진료비를 결제하고
,
주차장을 나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운전하던 남편과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차 안에는 적막이 일었다
.
그러다 처음 듣는 울음 참는 고된 숨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
운전대를 잡으며 펑펑 우는 남편을 위로해주고 싶었는데 그 소리를 듣자마자 펑
-
터진것처럼 도화선이 되어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내 눈에서도 마구 흘러내렸다
.
우리가 왜
?
우리 아기한테 왜
.
우리가 도대체 뭘 잘못했을까
.
우리 남부럽지 않게 열심히 살았고 나쁜짓도 안 하고 살았는데
.
도대체 우리한테 왜
?
정상인이 듣는 것 중
50%
만 듣는거라면 우리 아가야
,
하고 속삭이는 소리는 못 듣는거지
?
하고 물어본 남편의 떨리던 목소리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
그래도
50%
는 듣는다고 하니까 행여나 내 울음소리가 아기한테 들릴까봐
,
속싸개에 고이 싸인 우리 아기를 품에 안으며 이를 악물고 펑펑 울었다
.
세상이 미웠다
.
나는 지금 사형선고를 받은 것처럼 괴로워서 셀 수 없는 눈물방울이 얼굴을 타고 내려 온 몸이 축축한데
,
왜 창 밖의 사람들은 저렇게 웃고 있는 걸까
?
사람들은 아무일 없다는 듯 웃고 떠들고 얘기하는데 왜 우리만 이렇게 슬픈걸까요
.
왜
...?
우리한테 이런 일이 생긴걸까요
?
아시는 분 있어요
?
누구한테 물어보고 답을 얻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
하루는 임신 기간동안 내가 뭘 잘못했는지 하나씩 되짚어보고 생각해보다가
,
또 어떤 하루는 침대에 엎드려 울기만 하다가 또 어떤 하루는 이 불안한 날들이 너무 괴로워 수면제를 먹고 내도록 잠만 잔 기억이 있다
.
그런 후 우리는 조금씩 정신을 차려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의 난청 진단에 대한 사실을 알렸다
.
그 자리에서도 다들 많이 울었지만 어른들과 함께 하니 조금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
그리고선 어떻게 살았을까
.
사실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
아이가 벌써
7
살이라 이젠 그 사이 일들이 까마득하다
.
난청을 진단 받고서 우리는 그 후로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
삼십 평생 살았던 날 중 가장
.
이만큼 열심히 살아본적도 없다고 자부할정도로
.
그런 우리 부부가 한국
,
특히나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꼈던 포인트가 많았는데
.
첫째로 아기를 데리고 병원을 다니며 단 한 번도 의료비 부담을 느낀 적이 없었다
.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세계 어느 나라 중 따라갈 곳이 없었다
.
아무리 비싸고 어려운 검사을 받아도 부모가 부담할 본인부담금이 크지 않았다
.
그것은 우리가 한 달에 몇 번이고 병원을 방문하며 결제를 할 때 피부로 느꼈던 것이다
.
둘째는
,
우리 아이처럼 장애가 심하지 않아 장애진단을 받지 않아도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는
‘
발달재활바우처
’
가 발급되어 한 달에 몇 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내면 한 달에
4-5
회 언어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이용할 수가 있었다
.
잘 들리지 않으니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우리는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는데
,
집 근처의 언어치료센터를 찾아가니 담당 원장님께서
‘
발달재활바우처
’
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해주시며 여건이 되면 꼭 지원을 받으라고 알려주셨다
.
덕분에
7
살이 된 지금까지 서울시와 센터의 보호를 받으며 우리 아이가 이만큼 잘자랐다고 어딜 가도 떵떵거리며 자랑할 수가 있게 되었다
.
우리 부부는 꼬물거리던 그 작은 아이가 난청 진단을 받은 직후
,
평생을 말을 못하고 살게 되면 그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까
?
상상해보며 울지 않았던 밤이 없을 정도로 불안했으니까
.
살면서 이렇게 불안하고 슬퍼본적이 있었을까
.
우리 남편 표현에 의하면
‘
아기가 잠든 밤만 되면 미친 좀비가 태어나는 것 같아
.’
라고 할 정도로 나는 슬픔을 토해내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
그럴때마다 아이가 다니는 선생님들에게서 위로를 받고 아이를 치료해주시는 센터의 원장선생님
,
그리고 우리를 지지해주고 배려해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의지해 버텨내고 또 버텨내었다
.
그리고 세 번째로 나라에서 시행하는 제도에 무한한 감사를 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
아이가
5
살이 되어 새로운 기관에 입소했을때 보청기를 착용한 아이가 걱정되어 이도 저도 아무런 결정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
내가 눈독들이던 동네의 민간어린이집에
‘
통합반
’
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 세 명과 일반반 아이들 여럿이 한 반에 같이 지내며 활동하지만 통합반 선생님과 일반반 담임 선생님이 따로 계시어 보다 세심한 케어가 가능했고
,
또 아이들은 서로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우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다
.
들리는 것만 약할뿐 그 외 모든 것들이 일반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우리 아이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
이 때의 기억과 기록은 아직도 우리 부부의 가슴 한 켠에 따스히 남아있다
.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항상 소외당하고 격리당해야한다고 여겼는데 일반반 아이들과 어울리며 일반 아이들은 장애 아이를 배려하고 보살피는 태도를 배우고
,
또 장애 아이는 일반 아이들을 보며 부모가 가르쳐주지 못한 부분은 습득하니 정말 이보다 더 값진 경험은 없을 거라며
.
‘
서울에서 살고 있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해
.’
남편과 나는 자발적으로 서울시 사랑 전도사가 되었다
.
누군가 이런 제도에 대해 물어보거나 궁금해하면 나는 마치 못 알려줘서 안달난 사람처럼 내게 물어본 이를 붙잡고 열변을 토하며 가르쳐주었다
.
말 한마디 못하며 살면 어쩌지
?
전전긍긍 하며 하루를 일년처럼 살았던 우리 가족을
,
우리의 아이를 감싸주고 돌봐준 우리 주위의 모든 분들과 지자체에 오늘도 감사함을 듬뿍 담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
이제 아이는 우리가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정도로 보통의
7
살처럼 말도 잘하고 사고도 잘 치고 때론 우리를 슬프게도 기쁘게도 화나게도 만들며 아주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
어디선가 보았다
.
신은 조금 아프거나 특별한 아이를 세상에 보낼 때 이 특별한 선물을 감당할 만큼 착하고 큰 사람을 고른다 했다
.
그래서 우리 가족이 당첨된거라고
.
아이가 처음 난청 진단을 받았을 때 왜 하필 우리 아이냐고
,
왜 우리 가족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거냐며 수없이 슬퍼하며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우리를 도와주시는 많은 분들의 응원과 위로를 받으며 우리 부부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아이와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
아이를 낳기전에 봤다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무시했을 저 구절을 생각하며
,
우리 가족이 견딜 수 있는 아픔이기에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순간일거라 생각하며 나 자신을 스스로 위로했던 수많은 밤
.
아프지만 조금은 특별한 아이를 돌보며 살아가는 분들께 우리는 할 수 있을거라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충분히 행복한 자격이 있을거니까
.
그러니 힘을 내자고 이야기해보고 싶다
.
아이가 태중에 있었을때 조금만 더 건강에 신경을 썼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
결혼준비를 한다고 힘든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 아이는 비장애인이었을까
?
그러면 우리는 지금 걱정없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인생에는 절대적인 완벽한 삶이라는 건 없다
.
어떤 날은 아이 때문에 울기도 할 것이고
,
또 어떤 날은 아이 때문에 웃기도 할 것이다
.
그렇게 우리가 열심히 살다보면 우리는 최선의 모양을 뽐내는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행복한 난청 육아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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