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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장려상] 같이 걸을까?(최O온)

관리자 2023.04.26 21:13 조회 179
 2021년 9월 13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던 날, 나의 아기 "해나"를 만났다. 예정일보다 3주나 일찍 진통이 왔고, 출산이 두려웠던 나는 의료진에게 제왕수술을 요청했다.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이미 아기가 많이 내려와 즉시 분만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나는 분만실로 끌려 들어갔고, 분만실 입장 10분 만에 출산을 했다. 이 이야기를 타인에게 하면 돌아오는 말은 "쉬운 출산이었다", "해나가 효녀다"였다. 출산 후의 나는 '이 세상에 쉬운 출산은 대체 어디에 있지?', '도대체 누가 자연분만하면 성큼성큼 걸어서 아기를 만나러 가는 거지?'라는 생각들과 함께 형태가 없는 상대를 향한 배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출산 후 회음부가 너무 아파서 남편 없이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화장실 변기에 앉지도 못하는 게 지금 내 신세였으니 말이다. 

  해나는 태어났을 때 2.3kg으로 다른 아기들보다 작았다. 작게 태어난 탓에 먹는 양도 적어서 그만큼 자주 수유를 해야 했고, 이 세상에 나와서 크느라 많이 아파했다. 대게 신생아는 하루에 14시간~18시간 잔다고들 하는데, 해나는 잠을 안 자고 하루 종일 울기만 했다. 타인의 SNS를 보면 아기를 만난 순간부터 사랑에 빠진 듯한 글로 가득한데, 아기 울음소리를 하루 종일 듣고 있으니 해나가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해나를 출산하면서 내가 얻은 것은 하나도 없고, 잃은 것은 수십, 수백 가지라는 생각뿐이었다. 이때의 나는 나의 힘듦이 너무나 크게 느껴져서 육아 선배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곱게 들리지 않았고, 출근하는 남편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해나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편과 나의 선택으로 태어난 아기이기 때문에, 신이 나에게 이전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라며 내린 선물이라 여기기로 했다. 오늘보다 더 성장한 해나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해나가 6개월에 접어드는 22년 3월의 어느 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21년 출생 학부모 채팅방에 '서울시 공동육아지원사업 부모 자조모임' 사업에 대한 글을 공유하며 팀을 꾸리고 싶다고 말하는 분이 계셨다. '서울시 공동육아지원사업'이란, 육아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부모 자조모임을 지원하는 사업인데, 자조모임을 통해 육아 품앗이 및 육아의 어려움을 공유하여 독박 육아, 고립 육아를 해소하는 데에 취지를 두고 있다. 동네에 가족도 친구도 없던 나는 팀원이 되고 싶다고 지원을 했다. 해나가 어리기도 했지만, "코로나"라는 무서운 역병과 추운 계절 탓에 잠깐의 외출도 하지 않았던 나는 사람과의 만남과 대화가 너무나 절실했다. 육아는 육아 서적에 나오는 대로 진행되지 않고, 남편과 나는 초보 부모이기에 지금 우리가 잘 하고 있는 건가 의아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모여 육아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서로 토닥토닥 위로함으로써 육아의 긍정적인 부분을 찾고 싶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리의 팀 이름은 "콧바람 육아".

 "콧바람 육아" 팀이 만들어지고, 자조모임은 월 1회 이상 정기적인 모임을 해야 했다. 첫 번째 모임은 키즈카페에서 진행되었는데, 돌이 지나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기부터 앉아서 장난감을 탐색하는 해나까지 6명의 아기를 나란히 앉혀놓으니 이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기념사진을 찍은 후 놀잇감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아기들의 발달 차이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6명의 아기 중에 해나가 가장 어렸는데, 해나는 대근육 발달이 다소 늦은 편인지 6개월에 진입해서야 뒤집기를 했다. 친구들은 걷고 기면서 여기저기 놓인 장난감에 눈이 반짝반짝하는데, 해나는 엄마 무릎에 앉아서 주변에 놓인 장난감만 가지고 놀다 잠이 들었다. 신나게 즐기는 다른 아기들을 내 눈으로 보니, 부모가 대단하고 부럽다는 마음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나보다 먼저 육아를 시작했으니 아기가 잘 걷고 잘 노는 건 당연한 일인데, 해나가 전반적으로 발달이 조금씩 늦다 보니까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지?', '해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저 아기는 엄마랑 어떻게 놀기에 활발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찼다. 복잡한 감정을 가진 채 두 시간이 빠르게 흘러 우리의 첫 만남은 이렇게 종료되었다.

 산책하기 좋은 5월, 본격적인 나들이를 시작했다. 자조 모임의 두 번째 장소는 강서구에 위치한 "국립항공 박물관" 이었다. 남편 없이 해나와 단둘이 외출을 하다니! 두려움 반 설렘 반인 마음으로 국립항공박물관에 갔다. 해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줄곧 엄마하고만 지내온 탓에, 타인의 접촉이나 관심을 좋아하지 않았다. 남들이 말하는 "엄마 껌딱지" 가 바로 나의 아기였다. 같이 놀러 온 친구들처럼 모형 비행기에 관심을 보이면 참 좋으련만, 해나는 엄마 품에 꼭 붙어있으려고만 하니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해나가 친구들과 어울려서 잘 놀길 바라는 건 나의 욕심일까? 이번에도 내 아이의 부족함에 대한 복잡한 생각은 떨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해나를 안은 채 박물관에 전시된 여러 가지 모형 비행기를 보며 밝은 미래를 떠올려 보았다. 해나와 비행기를 타고 더 먼 곳으로 가고 싶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잠깐, 내가 해나와 여행을 간다고? 

무더운 7월, 해나가 10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해나와 단둘이 강원도 묵호로 떠났다. 해나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서울에서 묵호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도중에 비가 내리고 안개가 가득 껴서 시야가 흐릿했고, 해나는 뒷좌석에 홀로 앉아 엄마가 보이지 않아서 힘들어했다. 우리는 출발한 지 5시간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이 정도로 힘들 거라곤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나 지쳤었지만, 해나가 차에서 잘 버텨주었고 우리는 무사히 도착했으니 다행이라는 마음뿐이었다. 숙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파도 소리와 시원한 바람이 해나에게 꿀잠을 선사해 주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한적한 바닷길 따라 걷고. 힘들게 온 시간이 잊힐 만큼 여유로운 날을 보냈다. 먼 훗날 해나가 엄마와 단 둘이 온 첫 여행을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엄마와 함께 들었던 파도 소리, 시원한 바람, 맑은 공기, 한적한 분위기를 느끼며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를 바랐다. 나는 이렇게 조금씩 해나에게 사랑을 주고 있었다.

더위가 꺾이는 9월, 해나의 첫 생일을 앞두고 우리 집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방문했다. 지금까지 감염 없이 잘 버텨왔는데, 돌잔치를 앞두고 우리 식구 모두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라니. 해나는 새벽에 고열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의 아기는 이 날 만큼 울어본 적이 없다. 온 몸이 불덩이고, 너무 울어서 눈 주위가 시뻘게졌다. 울다 지쳐 초점 잃은 눈, 축  쳐진 어깨를 보고 있자니 내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안아주는 것뿐. "아기 대신 내가 아프고 싶다"라는 말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해나는 이틀을 고열로 고생하고 언제 아팠냐는 듯이 탑 쌓기 놀이를 즐겼다. 며칠 후, 해나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무사히 돌잔치를 치렀다. 이번 일로 인해 아기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또 한 번 부모로서 육아의 어려움과 나를 잘 키워주신 내 부모님에 대한 위대함을 느꼈던 날이었다.

짙게 물든 단풍의 계절, 11월 11일은 마지막 자조모임이 있었다. 3월부터 만난 우리 아기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있었다. 아장아장 걷던 아기는 빠르게 달리고, 얌전히 앉아서 친구들을 관찰하던 아기는 엄마 손을 잡고 한발 한발 걷고 있었다. 매달 정기모임을 가지고, 문화센터 수업에 함께 참여하고, 심심할 때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틈틈이 공동육아시간을 가진 "콧바람 육아"팀. 우리는 자조모임을 통해 아기들에게 "인생 첫 번째 친구들"을 만들어주었고, 엄마들 역시 끝이 없는 육아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공식 모임은 오늘로서 종료되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꾸준히 만나서 같이 놀고, 같이 먹고, 즐거운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가 될 것이다.

해가 바뀌고, 해나는 3월에 어린이집에 입소하였다. '과연 해나가 나랑 떨어져서 기관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염려되는 마음은 있었다. 해나는 사람이 많은 곳, 시끄러운 장소를 굉장히 싫어하고, 본인만의 공간이 필요한 아기이다. 집에서 엄마와 조용히 편안하게 17개월을 지내왔는데, 어린이집에서 10명의 친구들과 꾸준히 규칙적인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입소 첫 번째 주에는 엄마와 함께 교실에서 촉감놀이를 하고 교구를 탐색했다. 두 번째 주부터는 엄마와 떨어져서 한 시간씩 교실에서 지내보았는데, 해나가 세상 무너지는 듯이 울었다. 나는 해나가 우는 모습을 보아도 슬프거나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성장하는 해나가 되기 위한 길이니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어린이집 생활이 한 시간에서 두 시간으로 늘어나고, 점심 먹기까지 2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오전 놀이가 즐거운지 점심밥을 먹다가 졸기까지 한다나! 내 예상보다 빠르게 해나는 기관 생활에 녹아들고 있었다. 딱 한 달, 해나는 나와 웃으며 안녕을 하고 선생님 손을 잡고 씩씩하게 교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 엄마로서 인생을 지내는 것은 쉽지 않은 길이라는 건 대략 알고 있었지만, 내가 겪어보니 이렇게나 힘들고 이 정도로 행복한 생활이라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해나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해나보다 내가 우선인 마음이 가득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나보다 해나가 우선이고, '어떻게 하면 해나가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어떤 음식을 만들면 해나가 잘 먹을까?' 매일 고민하는 "엄마"가 되었다. 해나의 발걸음에 맞춰 나 역시 "엄마"로서의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해나와 걷는 이 길이 분명 꽃길만은 아닐 것이다.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상처를 보듬으며 맞잡은 두 손 놓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가야지. 

해나야, 엄마의 아기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