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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우수상] 더하기, 빼기, 그리고 곱하고 나누기(조O현)

관리자 2023.04.26 21:18 조회 256
[덧셈이 찾아왔던 날]

여느 겨울 날, 우리 집에 생명이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춥지 않았던 보통의 겨울 날, 우리 아이는 건강하게 아빠와 엄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꼭 감고 있었던 눈,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보라는 듯 힘차게 울던 입, 잘 펴지 못했던 손 모두가 여태까지 우리 집에는 없던 새로운 생명이었습니다. 나름 책도 많이 읽었다고, 일기도 많이 썼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를 떠올리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아빠가 표현하기에 앞서 우리 아기는 당연한 것처럼 꿋꿋하게 자신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기를 키우는 일도 더해졌습니다.

아들이 찾아오기 전 저는 우리집의 쉐프였습니다. 유투브에서 봤던 요리를 척척 하고 아내와 함께 즐기며 SNS에 자랑하던 흔한 남편이었습니다. 또한 나름 아내에게 잘한다고 생각했던 주책없는 남편이기도 했습니다. 퍽 재미있는 아내 덕분에 우리의 부부 생활은 항상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때로는 날선 말로 서로를 상처 입히기도, 일주일 넘게 말 하지 않고 카카오톡으로만 얘기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리 어려울 게 없었던 부부였습니다. 하지만, 예상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아이를 돌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먹을 수 있도록 분유 온도를 세심하게 맞추고, 먹은 뒤에는 소화가 잘 되도록 등을 두들겨 주고, 심지어는 잠도 재워야 하는 일들이 더해지곤 했습니다. 저는 나쁜 아빠일까요? 물론 우리의 아기는 너무 예쁘고 귀엽고 하나씩 커 가는 모습을 보며 항상 뿌듯했지만, 일이 늘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뛰어난 직원은 아니지만, 더 아무것도 모르던 사원 시절 과장님들은 귀여운 아들 혹은 딸 사진을 점심시간에 항상 자랑하곤 했습니다. 알록달록한 배경에 하나 같이 웃고 있었던 아이들은 너무 귀여웠지만 열 번이 넘어가니 저는 이해하지 못했죠. 세상에 즐거운 것이 너무 많은데 항상 아이 사진과 얘기를 하니 과장님들이 살짝 미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타놓은 분유를 모두 토하고 울던 아이를 돌보던 날 그제서야 과장님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활짝 웃던 아이들은 이런 엄마와 아빠의 순간을 지나 커가던 모습이었구나.

[뺄셈으로 착각했던 날]

아들이 나중에 커서 이 글을 읽으면 섭섭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아, 이 이야기는 섭섭하게 하라 만든것이 아니란다. 글을 끝까지 읽어보거라, 라는 말을 먼저 하고 마저 써보겠습니다. 아들이 점점 커가며 우리 가족의 일상은 변화했고,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는 엄마와 아빠의 뺄셈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분유를 타고, 이유식을 만들고, 어린이집을 보내고, 잠 못드는 밤을 함께 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렇게 취미 부자 였던 우리 부부의 취미는 많은 것을 빼야 했습니다. 게임 세계의 협곡을 누비던 아빠도, 예술을 다이어리 안에 그리던 엄마도 즐겁던 취미를 줄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준 만큼 우리 부부는 힘들어 했고 유달리 제가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저보다 더 많이 고생하는 아내보다도 제가 힘들어 했던 게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습니다만, 작년을 돌아보면 줄어든 개인 생활에 참으로 힘들어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 부부는 이심이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주례사는 존경스러운 분이 진행하고 ‘부부는 일심동체입니다’라고 하죠. 하지만 대학 시절 한 교수님은 부부는 절대로 일심동체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가깝고 모든 것을 같이 한다고 해도, 절대 똑같은 사람은 없다, 상대방을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항상 이해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뜻깊은 말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일에 치여 잊었나 봅니다. 아들이 태어나 무럭 무럭 자라나는 과정은, 제 시간을 가져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보다는 제 시간이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는 점이었지요. 제 시간이 없어졌다, 줄어들었다라는 것은 아들을 그저 수단으로 바라보았던 철없던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들이 잘 자라나고 하루 하루 새로운 표정으로 절 바라보고, 심지어 저에게 웃고 말을 걸고 저도 함께 소통하는 시간 들은 더 이상 제 시간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선사한 것입니다.

이 생각을 깨달은 것은 서울식물원에 놀러가서 아들이 선인장을 보고 아빠! 아빠! 아야!라고 외쳤던 때였습니다. 퍼뜩 깨달은 후 뽀로로 음료수를 마시면서 이 감정을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고마웠습니다. 이런 불성실한 아빠였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라준 아들이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그 후 서울식물원은 저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는 성지가 되었습니다.

[곱하기의 마술]

작년 가을이었을 겁니다. 여름이 아직 자기의 목소리를 냈지만 날짜로는 완연했던 가을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때부터 저희 가족에 마술이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 동안은 참 아들에게 가끔은 성질을 부리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니 그 모든 순간들이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백화점 바닥에 누워있다거나, 추운 날 놀이터에서 30분 동안 안 들어가거나, 야심차게 만든 비빔밥을 뱉어버릴 때는 가끔 놀랍기는 합니다만 모두 재미있는 순간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두 돌을 맞이하여 아내와 아들과 손잡고 수영장에 가던 그 때, 바깥은 겨울이라 추운데 실내의 훈훈한 온도와 웃고 있는 아들, 그리고 귀여운 아내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정말 나는 행복하구나. 내가 이런 행복한 순간을 누려도 되는지 믿겨 지지 않아 아내에게 물장난을 쳐버렸습니다.

거세게 응징 당했지만, 아내도 퍽 즐거워 했습니다. 우리 아내는 가진 재능이 참 많은 사람이고, 그 이상으로 재능을 무시할 정도로 웃는 게 예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아내가 고생하며 낳은 우리 아들도 웃는거라고 하면 서울시에서 내노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자랑만 했나요? 하지만 제가 심사를 한다면 반드시 우승일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저에게는 마법 같은 순간으로 느껴졌고, 심지어 일하면서 힘든 순간에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였습니다. 이 시간을 감히 우리 가족의 시간이 서로 곱해져 더욱 더 많은 즐거움을 만들어낸 마법의 시간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나눔의 미학]

요새라고 하기엔 좀 됐지만, 사는 곳을 기반으로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한 어플이 인기입니다. 특정 채소를 연상케 하는 이름인데요, 이 어플을 사용하면서 감탄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눔으로서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는 과정이 얼마나 좋았던지 모릅니다. 간혹 밤 늦게 낯선 사람을 뵙는다는 게 쉽지 않기도 하지만, 항상 친절했던 거래자 분들과 함께 추억이 많이 쌓였습니다. 올해 초, 아이가 혼자 1시간 이상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렇다 보니 아기가 있는 지인 부부들과 함께 간혹 만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느꼈던 것은 물건이나 서비스만 나눌 것이 아니라, 이런 육아의 경험도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 아빠도 다르고 아들, 딸 모두가 다 다르겠지만, 그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육아 경험을 나누고 경험에서 느꼈던 소중한 감정을 나눈다면 좀 더 행복한 육아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 대학 선배와 만날때는 새로운 레시피를 배웠고, 회사 동기를 만났을 때는 서울시의 새로운 장소를 배웠으며, 아는 형을 만날 때는 우리 도시의 새로운 정책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나눔으로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것을 또 우리 아들에게 경험하게 해주는 것은 너무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지난주에는 구립 도서관에 놀러가 그림책을 보고 꺄르르 웃던 아들의 모습은 정말이지 꿈에 그리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가 아는 것을 잘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주에 서울식물원을 간다는 식구만 두 가족이나 되니 말입니다.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우주를 창조하는 것과 같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주를 창조하다니 저 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너무 힘든 일 같지만 생각해보면 엄마와 아빠는 이미 저에게 우주를 만들어 주셨으니 할 만한 일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 한 구절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태양은 너무나 반짝이고 뜨거워 모든 것을 주지만 다가가기 어려우며, 달은 비교적 따사로워 우리를 감싸주지만 달 또한 평범한 사람이 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별은 서로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를 바라볼 수 있으며 바라보는 자에게 별빛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별이 좋습니다. 저는 아내와 아들에게 별이 되어주고, 아들과 아내는 저의 별입니다. 또한 다른 부부 또한 그럴 것입니다. 정말로 서로에게 별이 되어주고 별빛을 선사해 준다면 조금은 고될지 모르는 육아도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제 글이 그런 별빛이 되어줬으면 합니다. 별 같이 반짝이는 모든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들과 딸 모두 행복하길 바랍니다. 모두 반짝 반짝 빛나시길, 힘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