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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최우수상] 너로 인해 세상은 빛 나(천O림)

관리자 2023.04.26 21:21 조회 513
하늘이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인 나의 아기를 만나던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임신을 계획하고, 그에 따르는 지원을 알아보고, 필요한 용품들을 비교하여 최적의 쇼핑을 하고, 처음부터 하나부터 열 가지 모든 게 순차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아기를 만나던 순간만큼은 모든 게 신의 뜻인마냥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갑작스러운 진통이 왔을 때, 평소 이용하던 아이편한택시를 호출할 틈도 없이 급하게 일반택시를 불러 병원에 도착했는데 하필 택시의 카드리더기가 고장이 나 현금을 찾는데 한참을 헤맸다. 그렇게 도착한 병원에서 나는 우아한 산모이고 싶었지만 그 또한 욕심이었나보다. 출산 방법을 고민하면서 꼭 자연분만을 하리라 다짐하며 호흡법도 미리 연습했건만 장시간 몰아치는 진통으로 결국 제왕절개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게 온 천사를 처음 눈으로 보았을 때, 나는 기쁨과 안도의 눈물이 났다. 그런데 감동은 잠깐이었고 수술 통증으로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최소 6개월은 모유수유를 하리라 다짐했지만 나의 결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말 모유는 단 한 모금도 나오지 않았다.

“자연분만을 해야 아기한테도 산모한테도 좋데~” “모유수유가 아기에게 최고의 선물이라던데~?” 누군가 지나가면서 흘린 이런 말들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속에 꽂혔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능력한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36년을 살면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어봤다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그 순간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패와 좌절이라는 경험을 한 것 마냥 슬펐다. 내가 이 생명을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렀던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기가 태어난 지 1년 4개월 째,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그 좌절하던 내 모습이 귀엽다고 느껴질 정도로 육아에 익숙해지고 마음이 단단해졌지만, 이 모습 또한 나와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 그리고 지역사회의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이루어진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갑자기 찾아온 절망 속에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었이었을까?

작고 소중한 이 새생명에게 부족한 엄마가 되지 않으려면 육아도 배워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후조리원을 나오면 그때야 진정한 육아가 시작된다지?

조리원에 있을 때, 서울시에서 산모신생아관리서비스 지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곧바로 신청하고 좋은 선생님을 배정해달라고 센터에 간곡히 부탁드렸다. 다행히 12월 출생아가들이 다른 달에 비해서는 많지 않아 인기가 많은 관리사님으로 배정받을 수 있었다. 

조리원에서 퇴소해서 다음 날 산후관리사님이 오시기 전까지 무엇을 원하는지 수시로 울기만하는 아기 때문에 남편과 나는 일 년 같은 하룻밤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다음 날 친정엄마처럼 잘 챙겨주시는 분이 오셨고, 아기 수유와 목욕시키는 법, 재우는 법까지 차근차근 알려주셨다. 나는 조금씩 육아라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관리사님은 아기 돌봄 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온 관절이 아픈 나를 위해 하루 한 번 마사지도 해 주셨다. 덕분에 나는 좌절의 늪에 조금씩 헤어나올 수 있었다.

밤과 낮의 구분이 없는 생활의 연속 속에서도 예방접종과 영유아검진은 꼬박꼬박 받았는데 그때마다 아이편한택시로 아기와 함께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남편과 둘이서 지낼 땐 건강한 두 다리로 지하철과 버스 때로는 따릉이로 못 다닐 곳이 없었는데, 아기가 태어나니 자동차가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편한택시 기사님들도 어찌나 친절하시던지 이용하고 나면 무료로 이런 서비스를 받는 게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아기가 앉을 무렵엔 공동육아방(도담도담나눔터)을 다니면서 여러 아기엄마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는데, 정말 그 시간은 아주 목넘김이 짜릿한 탄산음료와 같은 시간이었다.

나만 좌절을 겪은 게 아니었다는 그 위안감에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또한 공동육아방 직원분들은 보육교사 자격증이 있으셔서 그런지 아기를 너무 이뻐해 주시고 이런저런 육아 팁도 많이 알려주셨다. 나는 내 자식이니 당연히 이쁘고 귀하지만, 이렇게 남의 아기도 이뻐해 주시는 주변 분들이 계시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때로는 감동이 밀려왔다.

사실 나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 다른 아기들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내 자식을 낳고 보니 다른 집 아기들도 너무 이쁘고 유모차 타고 지나가는 아기만 봐도 붙잡고 인사를 하고 싶더라. 이런 내 자신을 보니 과거의 새침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아주 민망할 지경이다.

이렇게 아기로 인해 세상과 또 다른 소통을 할 수 있다는게 지금도 너무 기쁘다. 그리고 공동육아방에서 만난 또래 엄마들과 자조모임을 만들어서 아기들의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육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사실 아기를 키우는데 있어 전문가는 의사도 상담사도 아니고 같은 개월 수의 아기를 가진 엄마들이라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특히 나 같은 첫아이 초보엄마들에겐 선배 엄마들의 조언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런 다양한 경험들을 하면서 출산 전에는 단편적으로만 보이던 세상이 다각도로 보이면서 조금 더 내 주변을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느낀다. 육아에는 정답도 지름길도 없고 사랑만이 있을 뿐이며 아기는 새로운 희망이라는 것을...

이제 우리 아기는 16개월에 들어섰다. 엄마의 불안과 염려가 무색하게 우리 아기는 정상발달 개월 수에 딱딱 맞게 기고 앉고 서고 걸었다.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똑똑하고 영리한지 모를 지경이다. 이럴 때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는 옛 속담이 틀린 게 하나 없다.

겨우 1년 남짓 키우고 이런 말을 한다고 육아 선배님들이 비웃으며 이제 시작이라고 더 키워보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짧은 기간 동안 동굴 속에도 들어가 보았고 터널도 지나왔으며,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타 보았다. 터널을 지났을 때 나를 반겨주었던 파란 하늘과 형형색색 꽃을 잊지 못한다. 우리 아기에게도 세상에 이런 아름다움과 다양함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 

걷고, 웃고, 울고, 떼쓰고, 넘어지고 또 다시 웃고, 매일매일 달라지는 나의 아기를 보며 이제는 불안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밝고 행복하게 성장할 것이고 세상은 너로 인해 빛 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제 너를 보며 눈가에 주름이 질 만큼 마음껏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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